아침부터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실 어제 막내가 노트북에 물을 (정확히 말하면 요플레를 섞은 물)을 쏟고 뒷처리를 하던 큰아이들이 엄마에게 비상 상황을 문자와 카톡으로 각 전달했다.
수업중에 확인하자마자 머릿속에 스팀이 끼얹져짐을 느끼지만 상황상 스팀을 가라앉히고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큰아이 톡으로 남기고 나머지 수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사실이 머릿속에 입력된 순간 그로 인해 비롯될 상황 내지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내 의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뒷처리)할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 흐름은 아침까지 이어지고 서비스센터를 검색하고 가장 최적의 상황에 대한 노선에 따라 아침에 부산히 움직임을 작정(?)했지만 내심 끌어오르는 짜증이 표출되지 못한 것이 아쉽기라도 한듯 내뱉어지고 만다. (어제 그 상황에 내가 있었다면 바로 쏟아냈을텐데 말이다)
이불정리를 하면서 '짜증나'소리가 입밖으로 튀어나가며 잠깐 집나간 이성은 바로 나를 정신차리게 했지만 이미 튀어나간 말은...
스스로 컴다운을 하며 그 소리가 자기에게 한 이야기인줄 엄마를 힐끗하는 2호에게 하은이한테 그런거 아니야 라고 해주고 덩달아 나 때문인가 싶은 3호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노트북에 물을 쏟아서 엄마가 수리하러 가야하는데 기분이 별로라고 말이다.
그래도 막내효과인가 뭔짓을 해도 예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암튼 3호 등교 후 바로 서비스센터로 출동한다. 다행히 1차 수리로 마무리가 되어서 48000원으로 일단 해결은 보았지만 그 뒷 상황은 아무도 모른단다.(그 뒷 상황은 그냥 뉴노트북을 장만하는걸로)
일상이 무너지고 특히나 내 루틴이 좌절되는 것에 무한히 좌절을 느끼는 1인이라 예상치 못하게 들어닥치는 상황에 취약하다. 특히나 일상적으로 치뤄야 하는 아주 사소한 것 조차도 내게는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크다보니 그 외 내 열망이 아닌 것들에 대한 부분은 터부시하거나 외면하고 싶어하는 편이다. 심지어 내 핸드폰 뒷판은 작년에 아작이 난 채로이고
역시나 작년에 2호가 부신 내 노트북 역시 아직도 수리되지 못한 채로 한쪽 구석에 모셔져있다.
오늘 노트북은 내 것이 아닌 남편 것이자 사용은 큰아이가 하는 것인데 요즘 내가 급할때 사용하고 있다.
오늘 집으로 귀가할 남편에게 잔소리 폭탄이 쏟아질 막내를 위한 내 마음이 더 작용했던 것일까?
아침 등굣길에 엄마 오늘 아빠오면 나 혼나겠지?라며 걱정한 막내에게 큰소리 쳐도 될 것 같다. 금쪽같은 엄마 시간 받쳐서 수리해 왔다 이놈아!
아이셋을 키우며 제일 아쉬운 것이 시간이자 자유인데 그 시간과 자유를 억압당하는 순간에 내 모든 감정선마져 억압을 당하지만 오늘 문득 내가 허락한 것 외에 것을 얻으려면 불허된 것에 대한 의연함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예상한 것은 언제나 예상한 정도로만 당도하지만
예상치 못한 것은 그 예상을 뛰어넘는 것을 선사한다.
그것이 불행이던 행복이던 말이다.
우연이라는 자연스러움이 주는 것을 허용하는 것, 그것이 인생을 다양한 색채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 내 색을 고집하며 내 색만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고 나에게 당도할 우연의 맛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내 우연은 내가 거하지 않을 곳에서 그곳의 풍경안에 나의 지금을 흔적으로 둔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우연이 내 앞에 당도해야 나는 그 우연이라는 것에 초연할까 싶은 마음도 든다. 내 취약성이 더 이상 취약성이 될수는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