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네 브라운을 알게 된 것은 굉장히 우연이랍니다. 영어 공부를 해볼까 해서 테드 경연을 매일 듣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브레네 브라운의 취약성에 대한 영상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검색해 보니 국내에 저서가 꽤 있는 분이더라고요. 이분에 대한 호기심은 강연에서 느낀 느낌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의 강연은 강연이라기보다는 푸근한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라 편안했거든요. 영상에서 느낀 느낌은 그녀의 저서에서도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제 인생에 취약성이란 부분을 의식하게 됩니다. 취약성이 뭘까요? 아마도 우리는 단점이나 콤플렉스 정도로 여기지 않을까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또 그녀의 저서를 통해 알게 된 취약성은 내 인생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아닌 내 인생의 뛰어넘을 허들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단점이나 콤플렉스를 없애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취약성은 그저 나를 아는 정보로서 그것을 근간으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의 원천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제 취약성이 무엇인지 그 취약성에 내가 매몰되어 내 인생의 넘지 못하거나 넘지 않은 허들이 많았구나 했습니다. 그 허들은 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넘어서지 않는 이상 언제나 내 인생 어느 순간에도 마주할 허들인 것입니다. 그 허들을 넘지 않고는 나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취약성을 안다는 것은 내가 넘을 허들에 대한 정보이자 그 허들을 넘기 위한 대처라고 할까요? 단순히 허들 자체만으로는 스스로 그것에 압도당하기 마련이지만 나 자신과 허들에 대한 정보를 통해 그 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노력을 하면 실수를 하고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노력을 하면 노력에 응당한 결과만을 생각했던 저는 이 문장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노력을 했기에 실수도 하고 노력을 했기에 실패도 경험할 수 있으며 내 한계를 알거나 내 역량치를 알게 되는 것인데 그 노력에 대한 결과만 생각하느라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세월이 많은 사람이었답니다.
성공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지금 시대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돈을 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만 치닿는 이 사회에 가장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취약성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닐까요? 마치 그것이 진짜 자기 노력의 부족인 양 자신을 탓하면서 말입니다.
살아보니 사람에게 기질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크게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일이 별거 아닌 기질도 있지만 그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기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취약성에 얼마나 도달하는지에 따라 그 인생의 판도가 갈린다고 할까요?
취약성에 먹히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나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닌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살아가게 할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쩍 현실에 치여 매일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술적 기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에 굉장히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두려움보다는 내가 유지하고 싶은 나만의 패턴이 무너지는 것이 사실 가장 싫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셋을 키우고 제가 속한 모든 곳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매 순간 나를 내려놓고 나의 편의나 나의 욕구보다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에 치중해야 하는 시기가 있더라고요. 아직 50대는 겪어보지 않아서 그 현실감이 지금의 40대보다 무거울지는 모르겠으나 전 현재 40대를 살아가며 매우 현실적인 타격감에 스스로 마음의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이 역시 제 취약성입니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기보다는 최대한 미뤄뒀다 하는 편이고 예를 들어 계절이 바뀌면서 아이들 옷 정리나 아이들 옷이나 신발이 작아져서 사야 하거나 그런 생활적인 부분에서요. 그리고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하는 자잘한 생활업무까지 저에게는 그냥 하는 게 되질 않습니다. 사실 하기 싫은 마음이 크겠지만요. 단순히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은 분명 제 취약성입니다.
제가 브레네 브라운에 빠져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저와 너무 비슷한 그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를 보면서 나도 알지 못했던 내가 대화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 역시 인생의 전반적인 부분이 정돈되지 못하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정리하며 완벽하게 만들어 냅니다. 내면에 얽히고설킨 것들을 보이는 생활적인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며 대리만족을 한다고 할까요? 이것도 취약성이 될 수 있지만 저는 제가 그럴 때 내 마음이 정리가 안되는 무엇으로 심란하구나를 할게 되었으니 취약성을 알고 극복했다고 할까요? 지금 정리의 몫은 내면의 청소를 넘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패턴으로 안정적이게 자리 잡았답니다.
브레네 브라운은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것이 그녀 삶의 모토이고 말입니다. 온 마음을 다한다는 건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겠다기보다는 자기 온 마음에 대한 최선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온 마음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면만을 말하진 않을 겁니다. 삶이 밝은 건 밝은 면만 있기 때문이 아닌 어둠을 밝음에 비쳐 자신의 빛으로 승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연역함, 나의 취약성까지 떠안을 수 있고 보듬을 수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만의 노력과 용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므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일궈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란 매 순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매 순간 용기를 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지 않고 싶은 내 이면이나 내 삶을 직면할 수 있다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랍니다. 저 역시 요즘 드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 나 자신의 인간다운 면모(?)가 스스로에게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례로 아이 친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순간 그 엄마가 편하게 여겨졌는지 안 해도 되는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하며 집에 와서 이불킥을 했답니다. 그 이면을 살펴보니 내가 나아보고 싶은 제 욕구였습니다. 얼마 전에 영상인지 글에서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는 말이 제 마음속에 콕 들어왔는데 아마 그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 엄마가 알고 있는 대로 그냥 둘걸 괜히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를 깎아내렸구나 싶었으니깐요. 진짜 있는 사람은 있는 척을 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있어 보이고 싶어 하니 있는 척하다가 망신당하는 거지요. 그것이 스스로 참 부끄럽더라고요. 그것이 내 취약성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 취약성은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아마도 어릴 때부터 남에게 지고 싶지 않고 밑지고 싶지 않은 제 성격적 본능일까요? 그것을 40대가 되어서야 인정하게 되었네요.
아마도 우리가 스스로의 취약성을 더 키우는 원인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잘나고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다는 걸 이미 스스로 알고 있으니 자꾸만 외면하는 것입니다. 외면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인데 말이지요. 반면에 그것을 자신의 나약함이나 못남으로 해석하고 나는 부족해, 나는 못났어, 나는 뭘 해도 안돼 라며 자기암시를 거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전 제 취약성이나 부족함을 마주하지 않고 외면함으로써 인정하지 않은 쪽에 가깝네요.
충분함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기준점이 각자 다를 텐데 우리는 사회적으로 보이는 기준점에 나를 두고 그것에 미치는지 못 미치는지에 따라 자신의 존재감을 결정합니다. 특히나 다른 이의 삶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많으면 많지 나보다 떨어지는 사람은 그 자체로 노출을 꺼릴 테니 말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SNS에서 노출되는 다른 이들의 삶에 자극을 받진 않습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하고 가치관에 따라 그것을 보고 해석하는 것이 분명 다르니깐요. 저는 오히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서 있는 사람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정도 그 정도까지 인거 같습니다. 그게 그거일까요? 갑자기 웃음이 나오네요. 이것 역시 제 취약성이려나요?
나는 취약성을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로 정의한다
이 문장이야말로 제 인생의 취약성으로 인해 얼마나 정지된 삶을 일궈왔는지 알려줍니다. 제 인생의 화두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인데 말이지요. 그 불안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버리면 그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 불안을 떠안고 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특히나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그 불안의 강도는 더 세지고 말입니다. 사실 불안정한 남편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말입니다. 결혼 후 생긴 가족들의 불안까지 떠안으며 그 불안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다고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 깁니다. 그 불안이 남편과 함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제 책임감에 모든 불안을 떠안고 해결하려고 살려고 했을까요? 아마 다 맞습니다. 지금은 왜 그토록 마음의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났는지 명확합니다.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이 제 삶을 잠식했던 것입니다. 그것 역시 제 취약성으로 불거진 감정입니다. 현실보다는 그 감정에 매몰되어 현실을 더 불안하게 느낀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뛰어들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변화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용감해진다
용감해질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외면하고 놓친 탓에 지금에서야 그 용기를 내기 위해 매일 자신을 갈아내며 살고 있습니다. 때 지난 용기는 더 큰마음의 작용이 필요하고 더 큰 의지가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탓하거나 세상을 등지려고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해 봅니다. 어른의 삶이란 것이 문득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책임지고 나아가려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재미있게 읽은 소설 <순례 주택>에 유명한 문구가 있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말입니다. 어른의 삶은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 매일 어른으로서 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른이 된지 한참 지난 40대에 절실하게 느낍니다. 어른으로 사는 일은 end가 아닌 매일 ing 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부족하다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그 당연한 사실에 대해 불거지는 감정에 휩싸여 자신을 더 숨기게 되는 거 같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을 통해 부족하면 어때? 부족해도 괜찮아! 부족한 걸 채우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부족하다 느끼는 것이지 그게 진짜 부족한지는 아무도 모를 일 아닐까요? 그냥 내가 채우고 싶은 부분에 부족함을 느끼는구나를 안다면 부족한 느낌으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에 함몰되진 않을 듯합니다. 저 역시 어른으로 살아가는 지금도 부족한 거 같고 뭔가 채워야 할 거 같은 사실보다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이 더 힘들답니다.
그런 감정으로 인해 부족한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눈앞에 그려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자신이 만들어낸 사념에 불과합니다. 그저 내가 왜 부족하다 느끼고 그 부족함이 채워졌을 때 내가 느낄 느낌에 대한 부분을 표현해 본다면 좀 더 명확하게 내 부족함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내려질 것입니다.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 말고도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수치심에 대한 부분은 그녀의 다른 저서 서평을 통해 자세히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만족스러우셨나요? 아니면 부족한 부분 또는 스스로의 취약성 때문에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셨나요?
저는 오늘 둘째 아이가 천식이 심해져서 주말 오전부터 병원에 있으면서 현실에 매몰되는 듯한 제 상황에 불편함이 몰려왔지만 '엄마, 아파서 미안해.'라는 아이 단 한마디에 그 불편함을 몰아냅니다.
단순히 제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 아이에게는 엄마에게 폐를 끼치는 듯하게 비친다는 것이 당연한 현실 앞에 제가 너무 현실 부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 않았나 불현듯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비현실 세계를 꿈꾸는 저에게 아이들은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나 봅니다. 아파서 미안한 게 아니고 아플 수 있는 거고 엄마로서 너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내심 아파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마음에 엄마로서 죄스러움도 스며드는 건 제가 엄마라서 일까요?
그러다 저녁 시간 배달 음식을 원하는 아이들과 있는 것으로 해결하고픈 엄마 사이에서 실랑이가 살짝 있었지만 있는 재료로 뚝딱 한 끼를 만들어내고 배달음식을 원했던 아이들이 맛있다며 먹어주니 갑자기 현실감의 충만함이 올라오더라고요.
이것이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의 부분이었을까요? 사실 오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달고 싶었는데 그 잔소리마저도 제 마음의 찌꺼기라는 것을 저 스스로 자각했기에 그저 현실에 주어진 내 임무를 잠잠히 행하는 것으로 저 스스로를 자제시킨 것이었죠. 제 취약성을 알기에 그 취약성이 불거지는 것에 대한 신호를 저 스스로 감지하고 취약성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어른으로서 제 삶을 온 마음을 다해 몸과 마음으로 일구어내려 애를 썼답니다. 이렇게 서평을 쓰면서 다시 한번 되새김이 되고 다짐이 되니 참 감사하네요.
우리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만의 삶을 충분히 살아내 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약성에 대한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그 호기심에 대한 결론으로서 취약성에 대한 용기를 내면 됩니다.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내 취약성을 매일 확인사살하고 그것과 마주하게 하지만 그럼으로써 우리는 강해지니깐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어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으니까요. 쉽지 않은 어른의 삶을 살아내는 당신을 응원하며 진주서평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