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서평 청소년문학 페인트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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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주서평은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며 나누면 좋을 청소년 소설 한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초5 딸에게 보라고 사준 책인데 제가 진행하는 북클럽 <책읽수다> 멤버 루피맘님께서 저자인 이희영 작가님의 <보통의 노을>책을 소개해주시길래 이희영 작가님의 또 다른 인기책인 <페인트>를 이번달 책으로 선정하고 읽게 되었답니다.



청소년 소설이라 바로 손이 가지 않지만 청소년 소설중에 심도깊게 독서토론이 가능한 책이 참 많습니다. 기억에 남는 책은 아몬드와 긴긴밤정도인데요, 이 두권은 북클럽에서 이미 나눴답니다. 이 두 책은 다른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페인트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고 키우는 부부들이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당연히 읽으면 좋을 책이구요.




자신이 바라는 아이로 만들려는 욕심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먼저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다만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부모가 된다고만 생각하고 부모로서의 양육에 대한 책임에 대한 무게로 부모의 근본을 떠올리며 살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양육하며 애로사항을 그저 아쉬움이나 한탄정도에서 그치며 부모노릇을 이어가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부모로서의 근본을 고민하게 된 것은 셋째를 낳은 후랍니다. 셋쨰를 낳고서야 부모가 단지 아이를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 덕에 시작한 부모공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제대로 부모노릇을 하기위해 애는 쓰고 있으니 빵점 부모는 적어도 아니겠죠?



아이가 부모를 키운다는 말도 괜한 말이 아닐겁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응당 한번씩 떠올리게 되는 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이와 부모는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동시에 가장 불필요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요한 존재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되어가는 건 부모와 아이가 결국에 건강하게 독립되고 독립되어지는 관계를 말합니다.



책 제목에 페인트는 부모를 선택할 아이가 예비부모와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정해지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소설속 배경이 되는 NC센터에서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NC센터에서는 버려진 아이를 국가에서 대신 양육하고 부모를 찾아주는 기관인데 아이와 예비부모의 모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최적의 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아이의 선택에 도움을 줍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애초 태생부터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지금의 부모를 선택할 아이가 몇이나 될까 하는 것이었답니다.


제가 자녀 입장에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지금의 부모님을 선택은 하고 싶지만 내가 처한 환경은 선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 책을 보고 가장 크게 느낀건 부모보다는 내가 선택하지 못한 채 잉태되는 순간 정해지는 환경이랍니다. 그 환경이라는 것이 부모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것이고 말입니다. 부모가 만들어낸 혹은 부모가 그 부모로 인해 얻어진 환경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허락할 수도 있고 결핍을 생성할 수도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살면서 많이 느꼈거든요.


부모입장에서 세아이를 키우며 가장 아쉬운 부분도 환경적인 부분입니다. 조금 더 갖춰진 주변환경과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부모였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치를 선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아쉽고 그 아쉬움을 채워주고픈게 부모로 살아가는 제 심정입니다.


초중생 아이를 키우며 갈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그 고민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아 내 아이를 키우는 일에 성실히 임하지만 부모로서 항상 아쉽고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런 마음을 내비치는 거 조차 아이들에게 상실감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들어내어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얼마전 중1 아들이 이렇게 묻더군요. "엄마, 우리집은 부자야?" 그 질문에 부자야 아니야가 아이가 원하는 답이 아니란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부쩍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지 못한 것, 그리고 본인의 경험치와 친구들의 경험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아이가 스스로 우리집의 현 위치를 파악하며 나름 고민하는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저의 그 옛시절을 떠올리며 아이가 가질 상실감을 마음으로 느꼈답니다.


과연 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이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우리집 연봉에 대한 질문에 조금 뻥튀기해서 대답해주고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부자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뻔한 교과서적 훈수를 두었답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어요. 친구집보다 우리집이 나을게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점에서 원칙적인 센터장 박이 저에게는 위안이 되었답니다. 자신이 자라온 불우한 어린시절의 기억을 센터내 아이들에게 되물림을 하고 싶지 않은 강한 의지로 아이들과 아이들과 맺어질 부모에게 원리원칙을 주장하며 아이들을 지켜내죠. 반면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최는 원칙보다는 애정과 마음을 아이들에게 더 실어주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은연중에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작가가 의도하고 두 인물의 설정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아이를 키울때 부모로서 주어진 환경과 아이에 기질에 맞는 확고한 원칙을 고수해야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환경에 대해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만 있다면 자칫 부모가 아이에게 쩔쩔매거나 못해준 것에 대한 죄인이 되기 쉽고 아이도 역시나 자신의 환경에 대한 상실을 채울 수 있는 결핍보다는 가지지 못한 시기의 마음으로 자랄 수 있으니깐 말입니다.


부족함없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마찬가지로 원칙을 우선시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이 없디고 하더라구요. 결핍이 없다는 건 곧 갈구하지 않고 열망하지 않을수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결핍이 없다는 것은 곧 소유할 의지가 생길 여지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소유나 갈망이 물질적인 부분만이 아니고 말입니다.


넘쳐도 문제이고 부족해도 문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문제의 해결책은 원리원칙이 될 수있다는 것, 그것을 일깨워준 소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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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크게 보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부모로 태어나는지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여지가 있기도 합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로 태어나지만 결국 자신으로서 살아내야 하고 자신으로서 부모에게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지만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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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장 박이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의 원인제공자인 자신의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원칙처럼 고수한 NC센터를 잠시 떠나 아버지에게 돌아갔던 건 아버지를 용서하거나 아버지를 인정하기 위함이 아닌 나로 살아내기 위한 박의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말입니다. 센터장 박은 아픈 내면아이를 품고 산 사람이지만 결국 모든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승화한 진짜 어른으로 자라 자신같은 아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되니 말입니다.


부모가 되면서 모르고 있던 내면아이에 대한 존재가 들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육아를 하며 자꾸만 들춰지는 자신의 내면아이로 인해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을 받는 부모가 적지 않거든요.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며 자자꾸만 오버랩되는 엄마의 모습으로 인해 마음속에 번민이 차오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관련 책도 많이보고 나눔을 통해 이야기되어지고 하는 과정속에 글로 써내려가며 내면아이를 위한 애도의 시간을 많이 보냈답니다. 지금은 엄마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나라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게 된 것은 내면아이를 외면하지 않은 용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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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마도 나로서 온전하게 살게 해주기 위해 부모에게 선물처럼 오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아이로 인해 민낯이 자꾸만 들춰지는 통에 그 화살이 자꾸만 아이에게 쏘아지므로 그 상처를 대물림할 수도 있지만 상처가 깊고 그 상처에 찔린 아픔을 겪었던 부모는 그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의지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그 의지의 마중물이 되어 부모는 아이로 인해 아이를 키우며 더욱 성숙한 어른으로 부모로 자신을 돌아볼며 성숙할때 비로소 아이가 바라보며 키워나갈 꿈이 되는 어른이자 부모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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