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의 고찰

by 진주

중1 큰아이는 비교적 순탄하게 키웠다. 잘 자고 잘 먹는 유순한 성격의 아이라 키우는 동안 진이 빠지거나 애가 타는 순간이 기억에 전혀 없다. (다만 태어날 때는 애를 좀 먹었지만 말이다. 1박 2일 유도 분만 실패로 결국 제왕으로 아이는 꺼내졌고?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수혈을 받았고 갑자기 혈압이 180까지 높아져서 모유수유도 못한 죄책감에 한동안 시달렸다는 흔하디 흔한 출산 스토리?)


기질적으로 까다롭지 않고 긍정적인 편이라 투정이나 짜증과도 거리가 멀다. 의도치 않게 동생이 둘이다 보니 혹여나 첫째로서 가져야 하는 의무감(?)을 짊어질까 싶어서 네가 첫째니깐, 네가 오빠니깐, 네가 형아니깐, 이런 말은 일채 하지 않았다. (사실 나 역시 내 부모로부터 네가 첫째니깐, 네가 누나니깐,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래서일까? 가끔 동생들과 똑같이 굴어서 엥? 하는 순간도 마주하게 되지만 우리 집에서 만큼은 그저 아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거 같아서 다행이지만 아주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그렇게 순딩 순딩하며 긍정적인 아이가 어느 날부터 얼굴이 어두워지고 동생들에게 짜증을 낸다. 사춘기 티 내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건 아이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의혹과 질문에 대한 해결되지 못함이었고 동생들에게 짜증은 그동안 참아낸 것의 배설물 내지, 큰아이로서 어쩔 수 없이 엄마의 힘듦이나 어려움이 아직 어린 동생들로 비롯된다 여기는지 자기 스스로 엄마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건 엄마 말 좀 들으라고 짜증을 내는 식으로 표현이 되는 거 같다. 사실 우리 집에서 큰애로 인해 내가 화나거나 혼내는 일은 거의 없다. 동생들로 인해 엄마의 화는 언제나 불거지고 그 화에 대한 화살은 전혀 의도치 않게 큰아이 마음에 심겨 그 화에 대한 대책을 동생들에게 짜증을 내는 식으로 엄마를 도와주는지 아닌지 애매한 선에서 항상 마무리가 된다. (사실 내 성격상 '너는 니 할 일이나 잘해'라는 말로 거드는 큰애를 나무라고 싶지만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거드는지 알기에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는다)


큰애를 아는 주변 선생님들도 하준이는 사춘기 별 탈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가실 거라 하시고 나도 그런 줄 알았지만 큰애의 사춘기는 엄한 곳에서 폭발했다. 바로 아빠, 내 남편과 말이다. 아직도 그날의 충격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도 아빠도 그 순간으로 인해 서로의 노선이 정확 해진 건 확실하다. 어느 순간부터 큰아이는 아빠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자기 기준에 부합되지 않은 듯한 아빠가 미워지기도 하면서 우연찮게 친구들 아빠들을 한 번씩 접하면서 자기 아빠가 더 나은점도 찾기 시작하며 스스로 아빠의 대한 인식을 다져나갔다. 물론 그 와중에 아빠와 둘이 게임을 하다 전혀 터질 시점이 아닌데 각자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무게로 둘이 붙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아빠와 중1 아들이 멱살잡이를 하고 그 분풀이로 아빠는 몇 가지 살림살이를...) 아들은 한창 아빠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힘들었고 아빠는 시댁일과 회사일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었던 것이다. 참는 게 익숙한 그 둘에게 그 일은 기점이 되었고 묶은 감정을 털어내었으니 차라리 다시 살 수 있는 살림살이가 망가진게 다행인것으로 치자.


그 뒤로 아이 아빠는 가장 애정하고 가장 애착이 많은 큰아이의 기분을 무지 살피며 눈치보기에 이르렀고 난 그 눈치 보는 남편의 모습이 참 안타까워 남편이 애잔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큰아이 역시 짜증이 났다 가도 곧 이내 풀어지며 자기 기분에 대한 사과를 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했으니 아이의 사춘기는 여러모로 개선의 방향으로 잘 흐르고 있다고 할까나?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아빠와의 심리적 기싸움이 끝나자마자 큰아이는 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빠른 편이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중학생 때 뭐가 되나, 뭐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말이다) 아이 나름은 꽤나 심각한지, 자기 스스로 내가 진로 때문에 잠이 안 온다 하고 먹으려고 사는 아이가 입맛이 없다면 잘 먹지도 않았다. 또 스스로 학교 진로상담을 신청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의 고뇌가 안쓰러웠지민 아이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태도를 보며 새삼 놀랍기도 하다. 아이는 물건 하나 사는 거 조차도 용돈 받을 날을 계산하며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서 그냥 사달라고 해도 사줄 거 같은데 말이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체육활동에 대한 활성화가 잘 되어 있어서 초등학교 때 운동에 관심도 없던 아이가 어느 날 배드민턴을 한다며 배드민턴 하는 곳을 알아봐 줄 수 있냐고 해서 주변 청소년 수련관에서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출석을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참여 중이다.


그러다 어느 날엔 축구에 빠지더니 갑자기 축구선수가 되겠단다? 구체적으로 목표도 세우며 말이다. 축구를 하게 되면 학원을 못 다니게 되는데 괜찮냐며 엄마에게 의견을 묻길래 '네가 하고 싶은 걸 충분히 해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어. 우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며 교과서적인 말은 건네고(속으로는 설마? 축구선수? 무슨 공부나 하지? 였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큰애는 어느 날 아주 진지한 태도로 '엄마,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공부나 해. 무슨 축구야!' 안 하하냐고 묻는다? 이건 무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역시 '네가 엄마가 하지 말라면 안 할 거야? 아마 너는 더 하고 싶거나 못하게 한 후회로 엄마를 원망하게 될지로 몰라.'라며 은근슬쩍 책임을 떠넘긴다.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속으로 '제발 공부 쪽으로 마음이 바꿔지길' 기도했다. 정말 아이가 축구에 재능이 있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어느 부슬비가 내리는 주말, 중학생들 축구클럽에 놀러 갔다 거기서 한골도 못 넣고 어시스트만 했다며 푸념을 하더니 그날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한 아들, 그다음 날 엄마 나 축구선수 안 할래, 체력이 이래 가지고 축구는 무슨, 이라며 축구선수의 대한 꿈은 그렇게 아이에게만 요란스럽게 끝이 나버렸다. 아직 종결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배려해서 축구교실은 다니기로 했고 말이다.


사춘기 아이는 지금 혼란스럽다.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과 이런 나였으면 하는 자신 사이의 괴리에서 가장 괴로운 건 부모가 아닌 아이 자신이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크는 과정 중이구나 싶지만 사실 가장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열이 나는 와중에도 학원 숙제를 끝내고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스스로의 몫을 해내는 아이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금의 시간들의 모두 너의 자양분이 될거야. 크기 위해서는 거센 바람도 퍼붓듯 내리는 비도 맞아야해. 그래야지 깊게 뿌리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말이야. 잘 자라도록 따스한 햇살을 너에게 더해줄 엄마아빠도 있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너의 일을 해나가면 돼.


아이의 사춘기는 잃어버림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얻어지는 과정이다. 아이가 잘 잃어버리고 자신만의 것으로 채워줄 수 있도록 부모도 잃어야 하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 잃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이를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춘기 부모로서의 최선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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