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같이 술 마시고 놀던 교회오빠를 마흔 중반에 마주하게 됐다. 술 마시고 놀던 오빠는 교회 목사님이 되었고 말이다. 갓 결혼해서 앳되던 오빠의 와이프는 사모님이 되었고 말이다. 거기에 아들만 셋, 앳되던 오빠의 와이프는 나보다 어린 친구였는데 보자마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말이다. 사모로서 겪어야 할 어려움과 아이셋 키우는 고단함이 느껴져서일까? 그도 아니면 나와는 정반대의 밝은 마음과 미소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밝은 마음과 미소를 보이는 애잔함때문이었을까? 자꾸만 안아주고 싶고 자꾸만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그녀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교회목사님이 된 오빠의 설교를 들으며 같이 술 마시며 놀던 그때가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저렇게 변해서(그 교회오빠는 잠깐가수로도 활동했던 일명 딴따라) 쓰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그때 그 시절 나로서 맘껏 살아내지 못한 내 모습도 떠올라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자꾸만 내 마음을 건드렸다.
아마도 그 시절 함께 한 그들은 내 아픔의 순간에 풍경처럼 있었기에 그들을 보며 지난 내 삶이 오버랩 된 듯하다. 왜 그렇게 아쉽고 또 아쉽고 그 시절을 마주하게 하는 그들을 보며 눈물이 차오를까? 생각해 보면 지나간 30대와 지금 살아내고 있는 40대에 대한 후회는 크지 않은 편이다. 30대에는 결혼 후 아이셋 낳으며 육아에 빠져 지냈고 30대 중후반에는 나로서 살고자 치열하게 지낸 나날이기에 (물론 여전히 그렇고 말이다.) 후회라기보다는 대견하고 잘 살아왔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잘 견뎌냈다는 안도감으로 후회의 틈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20대는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자유함과 때론 방탕함(?) 그리고 도전과 패기라고는 엿볼 수 없이 그저 스스로의 나약함과 용기 내지 못한 두려움이 잠식되어 있던 그 시절이었다. 10대부터 시작된 기질로 인한 회피와 방어는 20대까지도 이어지며 어른으로 전혀 성장되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나를 견뎌내고 나를 지켜내는 것에 급급하게 시간은 흘러만 갔던 거 같다. 그렇게 성장하지 못하고 자란 마음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 건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젊음이라는 요소 때문일까?
한 번도 후회 없는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삶에 대한 후회가 무언인지 깊숙이 느끼게 되었다. 긴긴 삶의 여정에 후회란 없을 순 없지만 후회가 덜 한 삶은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후회라는 건 자신이 선택해 온 삶에 대한 오점으로도 여겨지기에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수긍만 있다면 같은 후회라도 결이 다를 듯하다.
내 삶에 가장 후회는 용기 내지 못한 움츠러듬이니 지금에 삶에서도 용기내기 힘들고 용기 낼 수 없다 여기는 선택 앞에서 과감하게 용기 내어 보는 것이 내 삶에 오점을 덜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을 먼 훗날 마주하게 되는 때 눈물이 아닌 회상과 추억이 되려면 말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의 10대와 20대를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을 거고 그 최선은 어찌 됐던 나를 위한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회피와 방어 일색이지만 그때 낼 수 없었던 용기는 용기의 문제만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연약함이기도 했을 테니 말이다. 왜 그렇게 연약했냐고 하기엔 그 시절 아파하며 외롭게 눈물짓던 나를 알기에 그저 오늘의 눈물로 그 시절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오십이 훌쩍 넘어 목사님이 된 교회오빠와 새댁이던 사모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같이 술 먹고 놀던 그 시절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떠나지 못해 내 안에 머물던 그때의 나를 오늘에서야 마주하고 안녕해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잘 가 나의 2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