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일상을 보내던 곳을 떠나면 그곳에 두 발 담그고 있을 땐 보이지 않고 알기 어려웠던 것들이 드러납니다. '여기'에 없어봐야 비로소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되는 거죠. 어떤 것의 온전한 의미는 부재,혹은 결핍을 통해 알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알게 하라/최인아-
아이를 키우며 겪게 되는 수많은 변수는 부모를 성장하게 하거나 혹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엔 없던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부모로서 모양새를 갖춰가는 것이다. 변수를 통해서 말이다. 알고 있는 것을 경험하는 것과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을 경험하는 것의 차원은 전혀 다르다. 예상의 범위에서는 딱 그 예상만큼 얻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범위에서는 그 이상을 어떤식으로든 선사한다. 이번 가족여행이 그랬다. 아이셋에 애견까지 동반한 제주행이 우리 가족에게는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변수였고 경험이었다.
자차를 이용해 애견동반 여행은 자주하는 편이었기에 순한편인 강아지와 비행기를 타는 일이 애를 먹을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시그널이었을까? 제주행 이틀전에 애견미용을 맡기고 남편이 없었기에 강아지를 이동가방에 넣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이동시간에 강아지가 두어번 짖는 것이 아닌가? 그걸로 끝났으면 좋으려만, 내리려고 서 있는데 버스기사님이 '강아지를 도대체 어디에 뒀길래 짖느냐'하시며 불쾌한 티를 내시는 것이다. 이동가방이 검은색에 강아지마저 검은색이라 버스에 탑승할때 미처 인지를 못하시다 강아지 짖는 소리에 강아지가 탔구나를 아신듯 했다. 순간 등쪽부터 식은땀이 나며 불안이 덮치는 걸 알았다. '바로 내릴거에요. 죄송합니다.'한 뒤 제발 빨리 버스안에서 내리고픈 생각뿐이었다. 그와중에 앞좌석에 앉아계신 중년부부의 강아지를 다정하게 쳐다보시며 웃는 모습은 나에게 최고의 선의로 다가왔다.
더불어 불안에 떠는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선의가 굉장한 호의로 다가오는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주도내에서 애견동반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애견동반이라고 해도 애견을 동반하지 않은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이 애견을 동반한 주인의 마음일텐데, 대부분 애견동반 식당은 애견을 전혀 개이치 않았고 심지어 한 피자집에서는 사장님이 직접 다가오셔서 '강아지 간식줘도 돼요?'라며 다정하게 간식을 건내고 강아지를 이뻐해 주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공항 직원분들이 '강아지 귀엽다'라며 선의의 눈빛을 보내주신 덕분에 불안한 마음이 잠시나마 가라앉을 수 있었던 것은 전혀 모르는 이들의 선의와 호의 덕분이었음을 애견동반 제주행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사실 버스안에서 강아지로 인해 불안이 떠오르며 그 불안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괜시리 강아지랑 같이 안가면 안가겠다 했던 큰아이에게 불똥이 튀기기도 했다. 바로 이틀 뒤에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강아지의 짖음으로 인해 생길 온갖 변수에 대한 시나리오가 내 머릿속에 그려지며 온갖 불안의 요소들을 떠안은 탓이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또 그 불안의 실체를 알기 위해 강아지 동반 비행기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나름 팁을 얻기도 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막상 실체는 굉장히 달랐다. 사실 제일 다른 것은 영상속의 강아지와 전혀 다른 우리 강아지였던거지만 말이다.
순하긴 하지만 주인닮아 역시나 예민한 편인 우리집 강아지 여름이는 환경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자주 가는 할머니네집을 가도 안절부절 그 공간을 편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강아지다. 강아지를 키우며 처음으로 여행을 가게 됐을 때 2박3일을 할머니네집에 맡겼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열린 현관문으로 탈출해 걸어서 20분거리인 우리집까지 찾아온 대단한 녀석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항상 애견동반 여행을 해왔다. 가장 큰 이유는 큰아이의 강아지에 대한 불안때문이다. 또 탈출할까봐...) 그 뒤로 도저히 애견동반이 되지 않을 경우엔 할머니가 우리집에 와서 강아지를 돌보기도 했을 정도다.(차라리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강아지가 더 편할거 같아서 말이다.)
자차로 애견동반시에는 구지 이동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번 제주행은 공항에서부터 이동장에 있어야 했던 강아지의 불편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강아지때문에 일찍 공항에 가서 산책도 하고 이동장에 적응도 시키며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공항에서부터 억지로 이동장에 가둬 둔 것이 강아지를 더 자극한 듯 하다. 이런 상황일 때 가족들의 성향이 여실하게 드러나기 마련인데 우리집 식구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나 외는 대처를 하는 사람이 없다. 남편을 비롯해 초5인 딸은 강아지탓부터 시작해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 감정에 잠식되어 그 이상을 헤아리질 못한다. 나 역시 내면의 불안이 솟구치며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를 하려는 편인데(남편과 살면서 터득한 지혜다.) 이번에 중2 큰아이의 대처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 감정에 빠지기 보다는 엄마를 도와 처한 현실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아들을 보며 아들은 나를 닮았구나 싶으면서 참 대견했다. 큰아이가 아니었다면 혼란에 빠진 식구들 틈에 나조차도 멘붕이었을텐테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기도 전에 멍멍 짖기 시작하는 강아지에 멘탈이 내려앉을 뻔한 상황(이땐 진짜 울고 싶었다. 건너편 옆에 앉아 있던 젊은 부부가 강아지 짖음에 강아지 있나봐라며 미소를 건내줘서 참 고마웠다.)에서도 큰아이의 조언에 따라 강아지를 진정시켰더니 다행이 그 이상의 짖음없이 착륙까지 갈 수 있었다.
다행히 이동장을 벗어난 강아지는 더 이상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고 강아지를 위한 펜션에서의 느껴지는 호의 가득한 애견용품과 편의시설에 우리 식구는 완전 무장해제 되었다. 물론 애견동반이라 갈 수 있는 관광지와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적이었지만 이미 큰 불안을 견뎌낸 우리는 애견동반으로 인한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여행을 즐겼다. 물론 돌아가는 날 전에 다시 비행기를 타야하는 걱정이 없지만은 않았지만 한번의 경험 덕이었을까? 강아지는 돌아가는 비행내내 찍소리(?)없이 잠자면서 왔다. 가는 비행기안에서 다시는 애견동반 제주행은 절대 네버 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제주행을 꿈꾸게 됐다는 것.
어린 시절부터 불안에 대한 요소가 컸던 환경으로 인해 불안요소가 있는 경험은 아예 차단한채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살아왔다. 그 불안이 해결되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나보다 더 불안하고 그 불안을 두려움으로 대체하는 남편은 나의 불안을 가중시켰고 더군다나 주말부부로 혼자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 나의 불안은 극에 달하게 됐다. 특히 환경적인 면에서 말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주변과 사람을 살피는 일이 다반사였고 혹여나 있을 사고를 대비해 온갖 것을 챙기는 요령 덕에 세아이는 부주의로 인해 다치는 불상사를 단한번도 겪지 않았다. 위험해 보이는 것은 사전에 치워버리고 다칠 요소가 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엄마인 나는 항상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의 요구로 키우게 된 반려견은 나에게 애물단지이자 불안의 한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를 항상 키워왔기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지만 아이셋과 반려견까지 키우는 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요소가 더하는 것이라 내 입장에서는 강아지가 주는 안위 그 이상의 불편함도 감수하게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이 얼마나 불안에 취약한지 알게 되었고 부모의 불안이 아이들에게 전이가 고스란히 될 수밖에 없고 불안으로 인해 경험치를 넓힐 수 없던 부모의 삶이 아이들에게도 전이가 되지 않을까 싶으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불안의 요소를 걷어내기 보다는 겪어내어 대체할 수 있는 힘도 길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불안이라는 취약성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나를 키워주지는 못했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가둬두는 작은 어항처럼 말이다. 40년이상을 살아보니 경험치에 따른 대범함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불안해서 가둬둔 세상에서는 그 불안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지 않고 그저 보이지 않게 가려둔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극한의 불안을 같이 견뎌서일까? 김포공항에서는 미워죽겠던 강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더 애책이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같이 불안을 견디고 대처한 우리 가족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