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진주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 Nov 10. 2023

진주서평 배철현 <정적>



        

배철현 작가님은 코로나 시절 온라인으로 독서토론을 함께 한 70대 은퇴 교수님이 추천하신 <승화>덕분에 제 인생작가님으로 등극하신 가장 존경하고 가장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분입니다. 작가라는 호칭보다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겠지만 저는 책으로 알게 되었으니 작가님이라 호칭하겠습니다. 



승화라는 책을 보고 그간 읽었던 어떤 인문 철학서보다 저의 심금을 울리고 특히나 종교와 관련한 영적인 문장들은 종교를 가진 저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며 작가님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소화했었습니다. 승화 이후로 나머지 시리즈까지 완독하며 그렇게 작가님을 사모하다 마지맞으로 보게 된 <정적>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적합한 때에 말입니다. 


책은 그 시기마다 가장 탁월하고 적절한 문장으로 나에게 당도합니다. 여러분도 책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책이 인생 해설지인 양 저에게는 종종 그런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 책을 안 읽을 수가 없고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은 제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입니다. 눈과 마음으로 함께하는 영혼의 동반자라고 할까요?


40대를 지나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너무도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으니 현실적인 건 당연지사인데 그런 현실이 저에게는 꿈을 뺏기는 거 같고 나의 꿈을 질투하는 양 현실 쪽으로 기울도록만 하는 현실에 가슴이 시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조용히 잠잠히 읽히는 정적은 제 마음의 고요를 바라보게 하고 그 고요를 통해 내 안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명약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과의 간격을 존중하는 연습이다
간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을까요? 눈과 귀는 온갖 자극으로 가득하고 그렇잖아도 번민스런운 인생에 주변이 온통 정리되지 못한 먼지 폭풍을 일으키듯 온갖 현실적인 것에 가끔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스러워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고픈 욕구마저도 생기니 말입니다. 마음이 번잡하면 내 주변마저도 거추장스럽고 관련된 모든 것이 마땅찮게만 여겨집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마저도 말입니다. 


저 역시 제 안의 번뇌가 가득할 때 챙겨야 하는 자식들이 짐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짐을 다른 이에게 내던질 수도 없으니 짐을 짊어진 채 번뇌에 사로잡히다 보면 어느새 현실에 기가 눌러버립니다. 그럴수록 나 자신은 작아만지고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나를 더 괴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럴 때 잠잠히 거리를 두고 멀찍이 바라볼 수 있다면 가까이서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아이들과 남편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행동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주 현실적인 순간이 비현실적인 듯 느껴지며 그 일상 안의 깃든 고요함이 오히려 저에게 쉼으로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가족과 한 공간에 있지만 한걸음 물러나 내 영역을 지키면서도 잠잠히 함께 거하는 그 공기가 저에게는 참 평안이 된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서로 거리를 두고 잠잠히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도 사물도 환경도 모두 말입니다. 그저 서로를 지키는 선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므로 내 것을 조금 거두어 낼 수 있다면 어느새 친밀감이 싹틀 것입니다. 



친절과 진실이 너를 떠나지 않게 하라



우리는 친절을 기대하면서도 불칠절에 더 민감하고 진실을 원하면서도 거짓에 선동되기 쉽습니다. 굉장한 어패가 이 친절과 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친절과 진실을 나 외 다른 것에서 기대했기 때문일까요? 친절과 진실은 내 안에서 기인합니다. 내 안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친절과 진실을 마음의 석판에 새기는 작업이 배움이다
배움은 나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최선의 가치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금씩 개선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정돈되어 있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도 친절하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이자 저와 제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문장이기도 합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외적인 요소를 채우기 위함만이 아닌 내적인 요소를 채우므로 그것이 외적으로 연결이 되게 하는 것이 최종입니다. 


지금의 배움은 물질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무언가 더 얻어내기 위한 조건에 불과한 배움인 것입니다. 얻어내기 위한 배움은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지금의 배움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놓지 않습니다. 나는 빠진 세상과 성공한 그 누군가를 중심으로 두고 그것이 돼야 하는 양 그것을 위한 배움을 일삼습니다. 자아가 빠진 배움이 과연 내 것이 될 것인지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배움은 배울수록 비워지는 것이고 그 비움을 통해 나를 얻는 것입니다. 나를 얻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배움이자 인생 지혜 아닐까요?






마음의 수련을 거치지 않는 진보는 없다




마음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수련의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그 수련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정작 자신입니다. 자신에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움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에게 다가오는 배움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나를 가장 알지 못하는 것은 나의 배움의 소리를 무시하거나 방치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수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로 온전히 살았다 할 수 없고 신이 나에게 부여한 삶에 대해 과오를 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선가 들은 말입니다. '신은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지어내지 않았다'라고 말입니다. 타락을 하는 건 인간 자신의 의지입니다. 


혁신적인 인간은 스스로 훈련을 거듭하며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준비한다



다양한 자기개발서가 넘쳐나고 자기 개발을 하지 않는 자를 노력하지 않는 개인적 부족으로만 여기는 세상입니다. 물론 배우고자 하면 얼마든지 지식을 쌓을 수는 있지만 지식과 지혜의 영역은 반드시 다릅니다. 머리를 채우면서 마음을 비워야지만 비로소 온전한 자아로 성립될 수 있습니다. 자아가 성립이 되고 자신을 아는 힘을 가진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에 절망에 가까운 멸망하지 않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온전한 자아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것이 무너졌을 때 자아도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모릅니다. 







자신에게 감동적인 삶, 자신에게 행복한 삶이 최선이다



자아는 비울수록 기쁨이자 풍요입니다. 나를 움켜쥐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닌 나를 놓아야 나를 살리는 것이자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됩니다. 저 역시 매일 마주하는 순간순간마다 스스로를 의식하며 그때마다 떠오르는 상념을 비워내기도 하고 채우기도 합니다. 







나다움이라는 것은 곧 자존이자 실체입니다. 나다움의 실체는 나를 지탱해 줍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환경이나 물질 혹은 타인이 아닌 자기 스스로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정도에서 벗어나기 않도록 지켜내고 지켜줍니다. 요즘 자아가 혼란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은 점점 자아가 아닌 타자를 향하게 하고 그 타자에 빗대어 자신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상실을 주고 그 상실에 대한 채움으로 온갖 것의 욕망을 채우게 하는 탐욕을 가져다줍니다. 탐욕은 곧 자신의 멸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특별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이 책을 꼭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부모가 온전히 자아를 세우지 못하면 자녀 역시 그 자아를 세우는 일에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온전한 부모의 자존이 아이에게 유산이 될 수 있도록 부모 스스로 자신을 더욱 살필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살피기보다는 다른 이를 살피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혹은 갖추기 위해 아이들에게 덧씌우는 부모로 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내 자녀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고 부모 스스로 만족이 되니 말입니다. 



교육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스스로 깨닫기만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다양성 가운데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찾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오늘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그 어느 때보다 조용히 살피게 되었습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선생의 말보다는 때로는 잠잠히 지켜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배움을 주고 배워야 하는 존재이기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기도 전에 선생은 학생에게 지식을 집어넣으니 말입니다. 급하게 들어간 배움이 과연 아이의 것이 되었을까요? 여러 명의 아이들을 1년 6개월 가까이 가르쳐보니 아이마다 때가 다르고 그만큼 성과가 나는 때도 차이가 있습니다. 잘하지 못한다 자책하게 될 때 더 가르치며 배움을 넣는 것이 아닌 아이의 속도에 맞춰 아이가 소화할 양 정도의 배움을 공급하며 그저 아이가 아이의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도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도 가장 필요한 것이 때에 맞는 침묵과 기다림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자리에 설수록 배우게 됩니다.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미리 예고된 지하철 파업으로 매일 지하철을 타야 하는 저는 걱정과는 다르게 오고 갈 때 지하철이 마침 도착해 주었고 평소보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많긴 했지만 적당히 거리 유지가 될 정도는 여유가 있어서 평상시처럼 오고 갔답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고 그 거리감에 따른 여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아무리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세상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온전히 세상에 거하며 세상을 즐겁게 노니기 위해서는 채움이 아닌 비움이자 소란이 아닌 고요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소란 속에서 자신만의 정적을 즐길 수 있는 자가 이미 세상을 다 가진 것이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진주서평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