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일이 생겼을 때 그 일에 대한 대처는 기질마다 다르다. 자신의 감정이 우선시되어 그 문제가 감정에 압도되는 사람과 문제에 감정이 먼저 접수가 되지만 민원을 해결하는 양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이고 전자인 남편과 딸아이덕분에 한번씩 굉장히 마음이 답답해진다.
딸이 수학 문제를 풀다가 짜증을 내면서 연필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곧 자신의 감정에 먹힌다. 남편은 재정문제가 생기면 계획했던 것에 대한 포기와 한풀이가 시작된다. 오늘 이 부녀의 감정놀이를 동시에 마주하게 되니 내 속에 고구마가 먹힌다.
딸에게는 문제가 생겼을 때 짜증을 내거나 성질을 부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서 생기는 감정을 엄마는 이해하고 수용하지만 그 감정에만 매몰되어 문제가 생길때마다 성질을 내는 것으로 해결을 본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도 없고 너의 대응 방식이 곧 너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딸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도움을 나에게 요청했고 수학에 약한 엄마지만 답안지에 의지해 딸에게 도움을 준다.
남편과는 통화하면서 진짜 포기가 하고 싶으면 포기를 해버리면 되고 그럴게 아니라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남편은 다 큰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문제해결 방식에 멈추어진 어른아이다. 내 딸도 그런 대처가 고착화되면 남편처럼 되는 것이다.
애초에 도움을 주는 어른이 없었거나 문제발생시 그 문제를 알아봐주는 어른이 없었던 것일까? 그 문제에 대한 대처를 떼 쓰고 포기해 버리는 것을 선택한 남편은 어른이되어서도 여전하고 여전히 입버릇처럼 포기가 빠르고 안되는 이유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해서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이 자신은 쏙 뺀 남탓이나 환경탓이나 하는 어른으로 전략해 버린다.
무엇인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뇌내 검색을 하기 때문에 검색 결과는 이전과 다른 문제를 처리하지 못했을 때에 느꼈던 절망감으로 출력된다
<고민을 그만하고 싶습니다만>
나는 안되는 게 없는 사람이다. 뇌 구조 자체가 안되는 일은 되게 하면 되고 못하는 건 배우면 된다 주의다. 오죽하면 주위에서 너는 어찌 노가 없냐? 라고 할 정도이다. 내 뇌 구조는 노에 접근이 아닌 예스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그렇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예스로 접근하기에 될 이유나 되는 방법이 자동화되어 있다.
물론 불안요소가 있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일을 시작하기 전 사전에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는 취약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만큼 위험요소에 대한 대비는 항상 되어 있기에 대처 능력 또한 있는 편이다. 그렇게 내 대처 능력을 안될 이유만 가득한 남편과 딸을 설득하는데 쓰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한 일일 수밖에 없다.
딸과 남편은 고민이 많다. 그 고민이 결코 해결로 결론나지 않는다. 그 고민을 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합리화 하는 것이다. 그 고민을 위한 해결보다는 차라리 고민을 하면서 한탓하는게 속편한 것이다. 작년 가토 다이조의 <고민을 그만하고 싶습니다만>을 통해 남편을 머리로 굉장히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가슴까지 가지는 않지만 말이다.
고민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충족시키려 하는 것은
유아기의 욕구다
<고민을 그만하고 싶습니다만>
인생은 다가오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대응하고 반응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외적인 환경뿐 아닌 내적인 배경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이다. 내적인 배경이 약한 사람은 외적인 환경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내적인 배경이 든든한 사람은 외적인 환경을 바꿀 역량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
문제가 차라리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문제가 없을 수 없는 인생이니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잠식시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문제 발생은 곧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문제 대응 방식에 대해 나 역시 감정이 먼저 앞서기는 하지만 곧 그 문제 해결 방안내지 관찰에 대한 고찰을 남편과 딸에게 전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전히 내 속은 고구마 먹은 답답함을 안고 있지만 이렇게 글로 풀어내며 그들을 품어낼 마음을 글에 기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