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로 쓰는 사색일기 1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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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앞두고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린다. 물론 그 선택 자체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내 필요에 의해서이지만 말이다.



그 필요라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이다 보니 고민되는 것이고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을테다.



40대를 살아가는 아이셋 엄마에게 현실은 곧 돈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부담이 생긴다. 그 부담에 어깨가 짖눌리는 건 1차적으로 남편이었고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로써 내가 그 짐에 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그 짐을 지라 하지 않았다. 최소한으로 드는 시늉을 위해 2년전 본업을 시작하므로 내 위선은 적어도 지켜지고 있는 중이니깐.



오늘 최종적으로 직감에 의지해 선택을 내리고자 결정한 나는 아마도 안될 이유만을 보고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우연하게 마주친 어떤 그 순간이 가능성으로 내비져진건 또 의아하다.



그러다 오늘 읽기 시작한 <스토너>덕분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모든 의식을 글로 남기는 것이 내 선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내 선택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덜하지 않을까 하는 먼 미래까지도 보듬은양 말이다.



끝까지 철처하게 나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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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전에 보게 된 브런치 독자의 댓글 때문이었을까? 나의 선택에 안전판처럼 깔리게 된 이 댓글이 말이다.



내가 달려가고 싶은 길 또 가고 싶은 길에 중심은 언제나 나다. 아이셋 엄마가 아닌 그저 나란 사람 자체로 존재하며 그 존재가 원하는 여정을 가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성실하게 달려나갈때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결코 후회는 아닐테다. 엄마로써 아이들에 대한 혹은 남편에게 촤소한의 미안함이 깔린 아쉬움은 있겠지만 나로써는 그 아쉬움을 차라리 떠안고 마음 한켠 서늘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로써는 온전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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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가히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에 의해 대학에 보내지고 그 대학에서 자아가 읽혀진 스토너는 그 자아를 자신이 아닌 다른이가 알아보게 된다.(한편으로 나도 나 대신 나를 알아봐주는 현자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다.) 이미 그의 의식은 느끼고 있었지만 그 의식을 일깨워준 건 교수다.



아버지처럼 평생 농부일만 하고 살 것 같았고 대학마저도 그 농부 생활에 연장으로서 보내진 것인데 스토너는 그곳에서 자신의 이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왔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이상이 스토너 마음속에 심겨지고 있었던 것일까? 스토너는 애초에 현실과는 다르게 이상을 쫓을 수밖에 없던 성정이었던걸까?



아직 소설을 다 읽지 않았기에 지켜봐야겠다. 적어도 내 관점으로 스토너는 현실적으로 살아갈 운명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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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계속 하겠다는 스토너의 말에 부모는 정말 부모다운 대답을 한다. 어쩌면 이런 부모였으니 스토너는 이상을 꿈꿀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역시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선택에 의한 삶을 살아왔다. 물론 자라면서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한 부모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난 어느 누구보다도 내 인생에 대한 선택과 책임을 전적으로 내 몫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책임은 다 하되
내가 소멸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내가 현실에 젖어드는 건 어쩌면 나에게는 내가 소멸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주한 현실이 마치 나를 잡아먹을 듯한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스스로 꺼내어지길 바라지 않는 이 고양이처럼? 산책 길에 만난 고양이 근처에 두 마리 고양이가 배회하고 있는걸 봐서는 서로 아는 고양이인듯 한데 이 고양이는 끝까지 빠져 나오진 않았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걸까?







스스로 고립 되어진 자는 갇힌 현실이 다른이가 보는 것처럼 전혀 괴롭지 않다. 다만 지켜보는 이가 괴로울 뿐이지. 지켜보는 이의 괴로움까지 내가 책임져줄 필요는 없다. 그건 어디까지는 그의 몫일 뿐.



스토너를 더 읽어봐야겠다. 스토너의 의식은 과연 어떻게 전개되는지 말이다. 그 흐름이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하게 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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