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셋이 되고야 나로 살 용기를 냅니다

6. 지금이 순간

by 진주

나의 계절은 더디 간다. 계절을 몸으로 느끼기 전에 옷 정리라는 덫에 걸려 미루고 미루다 계절이 자리를 잡고 난 뒤에야 옷 정리를 시작하고 아이들 옷을 바꿔준다. 엄마라면 으레 계절에 앞서 아이들 옷을 딱 준비해 놓으면 좋으련만 이런 부분만큼은 게으른 나를 인정해준다.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는 건 지금 살아있는 순간에 충실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그 순간을 살아내는 엄마라는 존재가 정작 계절의 변화에는 더딘 거 보면 그만큼 주어진 현실이 팍팍하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계절을 우리 아이들에게 인도하는 인도자이기도 하다.


살아있다는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느냐 못 하느냐이다. 육아를 하며 지극한 현실을 마주하지만 그러지 못한 나의 자아는 이상을 좇느라 현실과의 괴리로 괴로운 순간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는 지금 딱 현실을 마주 바라보게 하고 지금 현재를 고스란히 살아가게 했다. 아이들 개학만 바라던 작년 3월, 개학 연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매 순간 부여잡고 달랬다. 매일 주어지는 아이 셋과 24시간, 하루를 꼬박 살아내야 하는 과제는 오로지 현재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정지된 것들이 많은 상황에서 나의 이상은 온데간데없이 오로지 현실을 잘 버텨내자는 과제만이 나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그때 ‘살아있다는 건’ 그림책을 보게 되었다.


매일 가는 산책로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고 했던가?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고자 시작한 아이들과 산책은 땅과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마스크로 내음을 맡을 수 없는 만큼 눈은 더 살아서 이것저것을 살피며 미약한 존재들을 바라보게 했다. 코로나 이후로 얻은 혜택이라면 산책이다. 그전에는 걸으며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명명 없이 그저 걷는 행위일 뿐이었다. 하지만 산책이라 명명하게 된 후 산책은 우리 가족의 또 다른 일상이 되었고 매일 같은 곳을 산책함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내일 풍경이 달랐다. 매일 새로움으로 우리를 맞아 주는 자연에 감동하며 자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일상을 잃어보고서야 일상을 다시 얻게 되는 것, 그것은 코로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상에 찌들어 있을 땐 살아있는 그 순간이 지루하기만 하고 별 볼 일 없는 거 같아 일탈을 자꾸만 꿈꾸게 된다. 하지만 통째로 일상을 잃어버린 후에는 우리가 별 볼 일 없다 여긴 것들을 향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였는지 깨닫게 된다.


24시간 단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었던 아이들도 언제 또 이렇게 붙어있을까 싶어 괜스레 아이들과의 시간이 귀하게도 느껴지고 아이들과 고스란히 일상을 누리는 기쁨이 새삼 고맙게도 여겨졌다. 비로소 살아있는 모든 것을 향유하고는 그제야 소망이 생기고 꿈을 꾸게 된다.

그림책 '살아있다는 건'

목이 마르고서야 물을 마시는 행동을 하는 거처럼 우리는 코로나로 모든 것이 정지되고서야 그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후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낯설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현실 또한 익숙한 것이 되었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모여야 과거 현재 미래가 된다. 과거 안에만 머물러진 듯 우리는 불안했지만 세상은 어느새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고 지금은 그 미래가 현실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우리가 코로나 전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면 여전히 불안하고 과거로의 회귀만을 꿈꾸며 지금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바뀌었고 우리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새로 맞이한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을 알아채고 알아보고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당면할 미래를 또한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그것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채우는 힘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정원사는 나의 정원을 꿈꾸며 지금 정원을 가꾸는 일에 집중한다.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미래를 앞서지 않는다.


10살 둘째 딸과 산책을 하며 딸아이가 뜬금없이 ‘엄마는 어느 순간이 좋아?’라고 한다. 별생각 없이 듣기 기분 좋은 말로 대답을 한다. ‘하은이랑 지금 산책하는 지금이 좋아.’ 갑자기 둘째는 지금 이 순간 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순간 빵 하고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내 마음에는 또 다른 혜안으로 새겨진다. 지금 아이와 마주하는 이 순간이 이 아이가 살아가며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질 기억으로 새겨질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 순간의 공기는 상상만 해도 행복의 미소를 짓게 한다.


코로나로 얻어진 또 하나의 혜택이라면 자연이라는 만물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의 눈이 다른 곳을 향할 뿐이지 자연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 자연은 반드시 내가 누리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애정을 줘야지만 바라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자연을 마주하는 건 내 마음의 정화이기도 하고 마음속에 남몰래 새어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우리의 착함은 자연을 바라봄이다. 코로나 상황 속에 불신이 생기고 불안이 떠오를 때, 우리의 나쁜 기운을 내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연 앞에 서야 한다. 자연 속에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 숨 쉬는 것들을 보며 의식을 지금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자꾸만 앞서거나 뒤쳐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머뭄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이 미래의 청사진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산책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순간을 오롯이 기억해줄 내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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