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셋이 되고야 나로 살 용기를 냅니다

8. 그토록 미워한 당신

by 진주

내가 살아가며 가장 미워한 사람은 남편이 아닐까 싶다. 나의 미움의 대상은 오로지 남편이다. 왜 남편에 대한 마음이 미움이었을까?


미움은 미울수록 쌓인다는 걸 남편에 대한 미움을 차곡차곡 모으며 알게 됐다. 그 미움은 어느새 분노가 되고 울화의 모습으로 나에게 당도했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미움의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미움이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난 미웠다. 얼굴만 봐도 내 얼굴은 일그러지고 말이 나가도 미운 말만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데 신기하지? 대상은 남편인데 미움이 쌓일수록 자꾸 내가 보인다. 내가 못나 보인다. 미운 말과 눈빛은 어느새 내 가슴에 와서 박히기 시작한다.


비로소 미움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미운 지, 미울 때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그 미움의 진짜 정체는 나인지 남편인지 말이다.

그림책 '미움'


가장 흔하디 흔한 이유는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에 대한 미움이다. 남편의 성향을 다른 게 아닌 틀리고 잘못됐다고만 여겼다. 나는 맞고 넌 언제나 틀리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빚어진 내 오만은 남편을 향해 여지없이 던져졌고 그 오만에 찔린 건 결국은 나였다. 나와 네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아직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온전히 그 사람 그대로 바라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만 들여다본다. 남편의 내 맘 같지 않은 부분을 내 입장에서가 아닌 남편 입장에서 그 사람의 행동과 말에 대한 숨겨진 뜻이나 바람을 헤아려본다.


한동안 미움이 너무 사무칠 때, 나 스스로 쏟아내는 미움의 감정들이 버거웠을 때, 글을 쓰며 나를 돌아봤다. 미운 마음이 가시지 않을 때 무조건 노트북을 켜고 그때 남편의 행동과 말 그리고 그 행동과 말에 대한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써내려 갔다. 어느새 감정 이면의 것이 떠오르며 이해가 되는 때를 맞이하게도 된다.


신기한 건 그 순간의 기록을 다시 보면 그때 그 오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부끄러움만이 한가득 나에게 실린다. 그냥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던 거다. 쓰레기통의 것은 그냥 버리면 그만. 그것이 나에게는 친구들에게 남편 욕을 쏟아놓고 뒤가 간질 한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속풀이 었다.


남편과는 주말부부인지라 해결되지 못한 채 묵힌 감정들이 많았다. 매일 보는 부부들은 그날그날 풀 수 있지만 우리 부부처럼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보는 부부는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이별을 맞으니 부부로서 관계의 구축을 다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내 친구 말에 의하면 결혼 13년 차인데도 아직도 신혼 같다고, 신혼의 투닥임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일 것이다. 다행인 건 내가 부모교육 공부를 하며 나의 최대의 난제는 남편이었는데 그 난제를 지금은 많이 풀어낸 상태다. 적어도 왜 그러는지 왜 그랬는지는 알았기에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슈퍼우먼이라고 한다. 뭐든지 다 잘하고 어려운 것 없이 다 해낸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남편은 자기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껴지기 않아 가정 안에서 편함을 누리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나의 불편함이 곧 남편의 편함인 것이다.


그 불편함을 함께 공유하기 시작한 건 셋째를 낳고 나서다. 난 그제야 힘듦의 티를 냈고 그 티를 남편은 다행히 알아차리게 된다. 두 아이를 키울 땐 두 아이 기저귀를 가는 일도 없었고 집안일도 거의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세 아이를 돌본다는 일은 두 아이를 키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앉았다 일어나며 앓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얼굴은 갈수록 일그러졌다.


어쩌면 남편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셋째가 우리에겐 필요했나 보다. 남편이 있을 때는 전적으로 셋째는 남편이 전담하고 나의 편함을 남편의 불편으로 채우며 내 얼굴은 조금씩 펴졌다. 나는 왜 그토록 모든 일에 불편함을 느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는지 그로 인해 내 주변은 편함을 누리긴 했지만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었다. 도움을 받는 일보다 도와주는 게 낫고 나의 힘듦을 내색하기보다 그저 감내하는 게 익숙한 나였다.


아마도 그것 역시 내 불편을 토로하지 못함이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전가된 게 아닌가 싶다. 나의 화살 받이가 된 남편,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있어주며 온갖 화살을 받아내며 아파하지 않았던 남편이 신기하다. 아프지 않았을까? 힘들지 않았을까? 단 한 번도 나에게 뭐라 한적 없이 다 받아냈던 남편에 대한 미움은 항상 남편의 승으로 끝났다.


나는 남편에 대해 좋은 말보다는 나와 맞지 않음에 불만만 항상 쏟아냈는데 항상 기승전 남편 승이었다. 난 어딜 가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고 나의 이야기를 들은 수많은 그녀들은 남편 편을 들기 일쑤였다. 같이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라고, 내 속을 누가 알겠어 라며 서운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기승전 남편승이 나를 바라보게 했고 나의 것을 속죄하는 기회가 되었다. 왜 나만 항상 나쁜 년이지 라는 마음도 가끔 있었지만 난 엄마가 되는 것에도 그렇게 성장통을 앓더니 아내가 되는 일에도 호된 성장통을 하며 비로소 아내의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관계 안에서 나를 알아가고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난 20대가 넘도록 하지 못했던 거 같다. 오로지 나만 느끼고 살았던 지라 관계 안에서의 나를 바라볼 필요도 기대도 없었다. 그러다 20대 마지막에 결혼을 하고 부부관계에 놓인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 혼란을 같이 겪어내며 이겨내기엔 남편의 부재가 잦았다. 그리고 우린 미성숙했다.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툴었던 내가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더불어 남편과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우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깨닫게 되기까지 미움에서 화로 화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울화로 나 스스로 미치고 팔짝 뛸 순간이 나를 괴롭혔지만 더 이상 나를 해치지 않기 위해 관계 안에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게 된다.


흔히들 남의 편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남편에 대해 쏟아내는 감정이 남편인 것처럼 치부해 버린다. 남의 편이라는 건 내 편이었음 하는 기대가 충족되지 못함에 절망으로 남의 편이라는 존재 의미를 붙여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을 슬쩍 떠넘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탓이 아닌 언제나 네 탓이오가 사실 우린 가장 편하고 쉬운 길이니 말이다.


남의 편이 내편이 되기 위해 남의 편의 일방적인 노력이나 애씀이 아닌 내편으로 만들고 싶은 아내의 욕구와 감정을 남의 편에게 요청함으로 남의 편이 아닌 내편으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나 역시 으레 남편이 알아서 내 등을 긁어주길, 내 힘듦을 알아채 주고 거들어 주길 은근한 마음과 눈빛을 전할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그 마음과 눈빛을 알아채고 등을 긁고 마음을 읽어주는 남편은 거의 없다.


나는 요즘 남편에게 나의 컨디션에 대해 그리고 원하는 욕구에 대해 이야기를 전하고 그것을 수용받는 중이다. 그렇게 될 때 관계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더 이상 내 감정을 남편의 원인으로 돌리지 않게 되고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을 나 스스로 처리하며 더 이상 남의 편이란 말에 모든 것을 떠넘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운 구석이 많지만 그 미움의 구석은 내 감정의 또 다른 형태라는 걸 안다. 미움이 사랑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오기 부린 시간이 참 많았다. 그 시간들이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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