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
임포스터는 사전적 의미로 사기꾼이라 남을 사칭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책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책 제목 옆 '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쓴 아이를 만든다'는 문구가 책 내용을 가늠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책 전반적인 내용이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지만 주변을 둘러 생각해보니 임포스터라 할 만한 요소를 가진 부류에 대한 이해의 차원에서 책을 완독은 했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임포이즘에 대한 전개가 전반적인 심리적 요소로써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은 남습니다.
반면 임포스터로 인한 메타인지에 대한 부분은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어서 적용면에서는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자신을 무능한 가짜라고 믿는 임포스터들은 두 가지 두드러진 행동양상을 보인다.바로 '과도한 노력'과 '미루기'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은 자기가 본래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기개념에서 생겨나는데 임포스터들은 불완전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실체가 들통나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서툰 자기 모습을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려 어려워 보이는 도전에는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임포스터들에게 잘 나타나는 완벽주의적 행동 특성이다.
임포스터에 대한 책에서 제시한 몇가지 특성만으로도 임포스터에 대한 개념은 인지가 됩니다. 임포스터는 한마디로 진짜 자기 모습을 들키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과도한 두려움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임포스터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메타인지와 관련해서는 자기 자신을 숨기게 되어지므로 자기에 대한 메타인지는 당연히 떨어지게 되고 완벽성에 대한 강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조차 알지 못한 채 자기가 가진 것을 전혀 발현하지 못한 채 멈춤 상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자인 리사 손 박사 역시 임포스터로써 지난 날을 회고하며 자신의 임포스터면을 고백합니다. 다만 미국이라는 배경과 이민자라는 배경이 임포이즘을 극대화한 것이 아닌가 싶어 우리나라 문화에서 이해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인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 의견입니다. 제 주변에 임포스터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고 제 자신이 전혀 임포스터가 아닌 이유때문에 공감이 덜 되기도 합니다.
메타인지면에서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으면서 모른다고 하는 것에 대한 차이도 분명하게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는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므로 여려가지 측면에서 좀 더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살제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는 것이 틀렸을 경우 그것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성격이나 기질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내용이 같을 지언정 기질에 따라 그것을 받아드리는 양상이 현저히 달라짐을 말입니다. 그런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임포스터는 자기가 저지를 지도 모르는 실수에 대해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축에 속합니다. 그러기에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도 모르는 것을 수용하는 면에 있어서도 자기 손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과 다른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라 내 생각이 다수와 다르면 참고 넘어가는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모나지 않고 둥글해야 한다는 양육자와 주변 환경때문일까요? 어쩌면 임포스터 개념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두드러진다고 하기에는 또 역부족입니다.
책을 읽고 임포스터는 오히려 능력이 있고 유능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가면증후군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애초에 유능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구지 자신의 모자람을 들킬 염려에 시달리지는 않을거 같으니 말입니다. 자기 유능함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스스로 기준치가 높으므로 인해서 과도한 노력에 대한 방어가 될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공부를 해야하는 학령기때는 오히려 배움에 대한 욕구가 없었는데 성인이 되어 사회 일환으로써 살아갈수록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알았다가 아닌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 하는 것이 아직도 많구나 느끼게 되고 말입니다.
살면서 또 배움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성장과 실패임이 조건일 수밖에 없는데 결과로써의 학습만 했던 교육 풍조가 실패나 실수에 대해 유연하지 못하므로 성공이나 성장이 아니면 포기하게 되어 버린 탓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성인을 레슨하며 느끼는 바는 모르기 때문에 레슨을 받는 것이고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기술적 학습을 위해 레스너가 필요한 것임에도 틀리거나 실수하는 것에 대한 자기 부정이 대부분 성인 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반면 학령기 아동 학습자들에게는 이런 면이 두드러지진 않습니다.
성인이 되어 살아갈수록 리타손 박사가 말하는 메타인지가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며 다시 학습할 기회를 갖는 자만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니까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실수나 실패에 대한 자기 방어일 뿐입니다. 자기 방어가 자기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우린 알지 못한 채 그저 머무름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요?
배움을 완결 짓는 칭찬이 아니라 유도하고 격려하는 칭찬, 성공은 학습 과정의 일부일 뿐
아이들이 학습을 하고 배움의 과정을 이어가는 것은 결과를 내기 위함보다는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자기 설정값을 올리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의 결과값을 기하게 되는 것이 배움의 가장 큰 유익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포스터는 과정보다는 결과값에 대한 과도한 칭찬으로 인해 자기 실력에 대한 탄로를 두려워한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들의 결과값에만 연연하게 된다면 역시나 결과값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스스로 움츠려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배움의 기회와 배움의 제공이 우선 되어야지 결과값으로만 상정하는 것은 진정한 배움의 길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다 판단 할 수 있어야 컨트롤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자기개발 차원에 있어서도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기준값이 있어야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메타인지는 자기를 아는 힘에서 비롯되고 자기를 아는 것이 자기를 성장시키는 가장 지름길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