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를 키우며

by 진주

주말 아침, 중간고사를 앞둔 큰아이는 주말 오전부터 일정이 있어 어제 저녁에 오늘 아침 메뉴를 일러주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만큼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라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이 명확한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이 수용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 맞춰 유연함을 발휘한다. 가령 원하는 메뉴가 있지만 이미 엄마가 준비해 놓을 경우 별 불평없이 받아드리고 다음에는 자기가 원하는 메뉴를 해주길 언질을 준다.


두번째로 일어난 둘째는 대충 메뉴가 무엇인지 알지만 자기만의 방식을 은연중에 흘린다.


"엄마는 왜 팬케이크에 과일을 올려 먹어?"

"과일을 올려야지 팬케이크가 더 맛있어서..."

"난 과일 올리면 눅눅해져서 싫어."


둘째는 프렌치토스트에 같이 올려주는 베이컨구이마저도 받자마자 덜어내 버린다. 취향이라고 여기며 그저 넘기면 될 법도 한데 가끔은 그 모습 속에서 남편이 오버랩이 되어 버린다. 주는대로 먹는 법 없이 준비하는 동안에도 별 참견을 흘리고 받고 나서도 단 한번도 그냥 먹는 적이 없다. 주로 레파토리는 '덜 익었네'다.


한번은 남편이 사다놓은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되는 레토르트 국 종류를 받자마자 '덜 익었네' 하는 소리를 듣고 기함을 한적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준 음식에 대해 자기 감정이 엄청 실린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다 만들어져 봉해진 제품을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되는걸 덜 익었다니... 본인은 말해놓고도 전혀 의식이 없어 다박다박 알려준 기억이 난다.


어쩌면 둘째도 엄마 음식에 대한 자기 감정이 실리는 것일까 싶은 순간에 막내가 일어나서 자기도 먹겠다고 한다. 막내 몫으로 남겨뒀기에 취향에 따라 시럽을 뿌릴지 과일을 먹을지 물은 후 접시에 담아준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엄마, 이건 뭐에요?"

"감자야."

"와, 맛있겠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친다. 상황에 따라 불평과 감사를 전하는 전혀 다른 성향은 삶마저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감사를 아는 사람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감사에 대한 부분을 아이들에게 언급하지도 않았을거다. 하지만 상점을 이용하거나 사회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타인에 대해 "감사합니다"는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얼마전에는 욕실 배수관이 막혀서 관리실에서 반장님이 오셔서 직접 뚫어주시며 양말이 다 젖은 모습을 보고 감사함과 죄송함이 올라와서 "양말이 다 젖어서 어쩌죠?"라고 하니 별 말 없이 그저 할 일을 마치신 연세가 좀 있으신 반장님은 괜찮다고 하신다. 급하게 집에 있는 사탕봉지와 박하스를 건내 드렸다.


보통은 수고를 대신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화 미안함이 깔려 있다. 아마도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성격탓일 것이다. 그러기에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한 후에 불평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함이 올라오는 것이 사실이다.


남편과는 사는내내 먹는게 맞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타박부터 하는 탓에 차려놓고 개수대에 버린 적도 있기에 결혼 17년차인 지금에서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알아서 해먹으라고 일렀다. 혼자 먹는 식사 같은 경우는 알아서 차려먹게 두고 가족이 다 같이 먹는 상황에서는 불평없이 감사히 잘 먹어주길 이야기한다.


둘째와 남편은 기질이 같은지라 서로 같이 있는 상황이 아니어도 똑같은 말을 내뱉는 경우가 있어서 유전자의 힘이 놀랍구나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하필 식탁에서 둘째가 남편같은 이야기를 하면 인상부터 구겨진다.


오늘 아침도 예민한 둘째는 사뭇 막내의 대한 반응에 따른 엄마의 태도를 감지한 듯 하다. 슬쩍 식탁에 끼려고 하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딸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면서도 살면서 득이 되지 않을 부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지 너만의 특성을 그저 그려려니 할지는 딸을 키우면서 지속적으로 겪게 되는 숙제이다.


살면서 모든 것을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상황에 따라 내 것을 참을수도 있는 순간은 분명 필요하다. 참아야하니 참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내것을 내려놓을 필요도 있기에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사 먹는 일이 하루에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자기식대로 해먹기만 할수는 없는 법이다. 다른 사람과의 식사자리가 있거나 밖에서 먹어야 할 경우 내 것을 고집만 한다면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먹는 것에는 나름 철학이 있지만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는 함께 하는 것에 맞춰서 내 것을 보류한다. 보류를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내 것에 대한 채움을 스스로 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둘째 입장에서 자기식을 들어내도 안전하다 여기기에 요구를 했던가 싶다?!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아직까지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매일이 숙제같은 고역인데 집에서 마저 보편성을 요구받는다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딸 아이에 대한 불편함으로 마무리지어졌을 것이 글을 쓰며 정리하므로 둘째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어느 누가 맞고 틀린 것은 없다. 각자 가진 특성이 다를 뿐이고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다를 뿐이다. 그 반응에 대한 해석 역시 각자 다를 것이다.


막내를 보며 이러니 이 아이가 인기가 많고 주변에서 사랑을 받는구나 싶지만 그렇다고 그러지 못한 둘째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저 둘째는 많이 지켜보고 많이 알아가야지만 진짜 그 아이를 알 수 있는 특성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가장 가까운 엄마 아니고는 말이다.


키우면서 제일 고민이 많았던 만큼 여전히 고민스러운 건 엄마로써 가진 신념에 대해 반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것에 반하는 일이 많은 경우는 그만큼 나 역시 단단하게 굳어진 신념일테니 둘째 덕분에 내 신념에 기름칠을 한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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