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이라 새벽예배 반주를 반주자들이 나눠서 하고 있다. 월요일과 금요일, 내 일상이 침범당하지 않을 선에서 요일을 골랐고 고난주간이 무색하게 나의 안위가 우선시 된다.
양귀자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서평을 쓰면서 피에 대한 구원, 혹은 구원에 대한 피흘림을 생각해본다. 하필 고난주간에 말이다.
구원이 있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만 한다.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것으로서 말이다.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길은 고난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는 것, 종교와 관계없이 이 진리는 명제다.
피를 보지 않고 되려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소설 속 주인공 강신주는 자신을 신의 자식이라 명하지만 허물뿐이다. 신으로 여기고 강신주를 모신 남기라는 신복에 의해서 그 피는 결국 흘려졌지만 말이다.
예베후 기도시간에 불현듯 권위에 순종하게 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남편에 대해서 말이다.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그렇게 순종으로 종결지어진다.
기도를 하고 난 후 결국 순종의 문제구나. 여전히 흘려야 하는 내 피가 있구나 싶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결코 쉽게 열리지 않는다. 나를 위한 문이던 나로 비롯된 타인의 문이던 말이다.
세상적 논리로는 이해의 문제이지만 기독교적 관점에는 순종의 문제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결론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