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친정엄마

엄마와 딸의 지난한 40대 이야기

by 진주

언젠가는 친정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아직 풀어내야 할 것이 많기에 쉽게 글감으로 삼기는 여전히 편하지 않다. 그런데 글쓰기 주제로 가족이야기가 나왔고 대상을 정하라는 말에 딱 한 사람 친정엄마만 떠올랐다. 기회 삼아 친정엄마 이야기를 수면 위로 떠오르기에 충분한 핑계거리가 되기에 이렇게 써 본다.


나이 마흔이 지나고 부쩍 친정엄마와 오버랩 되는 나를 만날 때가 많다. 그럴 때 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엄마처럼 되는 나를 마주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고개를 휘저으며 닮지 않으려 애를 쓴다.

엄마의 첫 증명사진


얼마전 엄마가 요양보호사 필기 시험을 보았다. 그동안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하며 증명사진 찍는 일부터 핸드폰으로 앱을 깔고 앱으로 처리하는 일까지 나는 달갑지 않게 해 드렸다. 해주지 않고 마음이 불편한 거 보다는 해주고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한 것이고 하기 싫기에 더 해드리려 나 스스로 다독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에게 딸로서 자리를 온전히 내어주지 못하는 나를 본다.


며칠 전 엄마 필기 시험날이라 전화를 드렸다. 시험 결과가 궁금한 엄마는 결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을 나에게 문의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엄마 핸드폰을 만져서 하는 거 아니고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엄마가 다시 전화가 왔다. 나와 통화를 마치고 바로 세 살 아래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동생이 바로 집으로 와서 결과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예상보다 점수를 잘 받으셔서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엄마는 이제 내일모레면 칠십을 앞 둔 연세임에도 육십 대로 보이지 않은 외모와 체력의 소유자다. 작지만 아주 강단 있는 여장군이라고 할까. 엄마는 그랬다. 그냥 강하다는 말 말고는 어떤 수식어도 떠오르지 않는 강인함의 소유자다.


엄마가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겠구나를 느끼건 교회 제자훈련을 하면 서다. 그 전까지 나는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도 공부를 하는 모습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교회에서 하는 교육에 참여하면서 당시 육십 초반이었던 엄마는 책을 가장 열심히 읽었고 가장 많은 글을 써서 모범생으로 불리셨다.


엄마는 칠남매 중 맏이 라는 이유로 중학교 밖에 못 나오고 맏딸로서 집안일을 도왔다고 한다. 혼기가 넘은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생계를 도와주다 그 당시로서 노총각에 가까운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외가를 떠나게 된다. 그렇게 나와 남동생을 낳고 키우면서 지금까지 몸 편할 일 없이 고생중이시다. 그런 엄마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모습은 나에게 낯설지만 엄마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엄마에게 책을 사다 주기도 하며 엄마의 책 읽기가 지속되기를 응원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치매인 외할머니를 모시고 점점 기력이 쇠하는 아빠를 돌보며 엄마는 책 읽을 마음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는 친정엄마가 주말에 심심하다며 전화가 온다. 나는 내 일상만으로도 꽉 차 그 이상의 여유가 없던 지라 ‘엄마, 책이라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 봐’ 라며 별 도움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끊고 나서 엄마 도서관 회원증 만들어서 책 빌리는 방법이라도 알려드릴까 싶었지만 항상 그랬듯 마음 뿐이고 실천까지는 쉽지 않은 딸이다.


아이 셋을 키우며 바쁘게 지나는 일상에 친정엄마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건 순전히 내가 내밀 수 있는 핑계일 뿐이다. 바로 코 앞이 친정이라도 나는 친정이 편하지 않다. 특히 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더욱 여지를 두지 않는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야속한 딸일 수도 있다. 항상 첫째인 나에게 도움을 구하는 전화를 먼저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내 반응에 엄마는 그냥 ‘알았다’ 라며 남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받으시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더 발을 뺄 수 있는 구실이 있음에 엄마의 요청을 거의 남동생에게 떠 넘기고 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똑똑하고 강인한 엄마가 엄마 뜻대로 살지 못한 삶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린다. 그것 역시 내가 아이 셋을 키우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 투쟁하듯이 나를 지켜내는 내 삶을 살아보니, 자기 삶을 살아내지 못한 엄마가 안타깝고 불쌍하다. 나 스스로 풀어내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때쯤 아마도 엄마에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시작이 이렇게 엄마이야기를 풀어내는 지금부터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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