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우주가 되어 주는 날을 고대하며
친정엄마는 평생 한량 같은 친정아빠로 인해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평생을 살아오고 있다. 일흔을 앞둔 연세에도 생계의 짐을 덜어내지 못한 채, 삶의 무게로 주름 한번 펴지 못하고 매일을 살아간다. 며칠 전 시간이 생겼다며 어디 갈 곳 없냐고 물으신다. 말인즉슨 나에게 SOS를 치신 것이다. 살갑지 않은 딸이지만 그나마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곧잘 마음을 터놓으시곤 한다. 쉬는 동안 꼴 보기 싫은 남편과 있기가 싫으셨던 거다. 허나 하나 밖에 없는 딸내미는 시아버지가 서울 병원에 검사가 있어 2박 3일을 모시고 있는 상황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실 그 이유는 핑계일 뿐이고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도 딸로서 나서서 해결을 봐드리고 싶진 않다. 그저 지켜만 볼 뿐이지. 그리고 해결을 한다고 해서 응할 엄마도 아니고 결국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내하는 쪽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 세상 제일인 줄 아시는 분이니 애쓰므로 서운한 것보다 그려려니 하는 쪽이 내 편에서는 쉬울 뿐이다.
엄마는 큰딸이라는 이유로 치매인 할머니를 4년째 모시고 있으면서 스스로 잘하지 못함에 죄책감을 토로하시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본인 선에서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현실을 묵묵히 견디고만 계신다. 자기식대로 그 현실을 견디면서 말이다. 딸인 내가 나서서 다른 형제들에게 모시도록 유도를 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엄마 쪽에서 견디는 방법 그 이상 어떠한 상황도 원치 않으셨기에 무마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할머니 문제에 관해서는 손을 떼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으로 아무리 애를 써봤자 엄마가 의지를 내지 않는 이상 소용이 없음을 알았기에 그저 지켜보기로만 했다.
그 와중에 친정아빠는 매일 막걸리로 연명 중이시니 평생 술 때문에 골치 앓는 엄마는 아빠 보기가 미워 죽을 지경이다. 미우면 더 밉다. 미우니 화가 나고 원망이 올라오고 신세한탄에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까지... 안 봐도 뻔한 스토리가 엄마 마음을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느껴진다. 사실 엄마가 가장 힘들 거다.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무게를 떠안는 것도 엄마고 그 현실에 대한 번뇌까지 엄마 마음에서 요동치니 말이다. 딸로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지만 지켜볼 뿐 그 이상 어쩌지 못한다. 엄마 스스로 그 틀을 깨고 나오려 하지 않은 이상 아무리 자식인 내가 나선다고 해도 미봉책에 불가할 뿐이다.
할머니를 모신 이후 엄마는 그동안 외면하거나 몰랐던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는 여러 형국을 맞았음에도 자기만의 세계를 고수하며 괴로워하신다. 그건 현실이 괴롭기 때문이라기 보다 자신을 알아가고 그 현실을 뛰어넘을 우주의 당도인데 자기만의 우주가 깨지면 자신이 멸망하는 양 껴안으며 매일 자멸하는 삶을 견뎌내는 것 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보는 딸로서는 회유도 하고 권유도 하지만 견고한 엄마의 우주는 결코 받아들이질 못한다.
일흔 가까이 살아오면서도 본인 스스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우주 외는 자기의 것이 아닌 양 좁디좁은 우주에 갇힌 엄마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그런 엄마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는 딸인 나도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엄마의 인생을 그저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난 그런 인생이 되지 않아야지 다짐할 뿐이다.
가족으로서 딸이고 엄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서로의 세계로 입성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넘지 못할 선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길어지니 우리에게는 그 선이 넘지 못할 삼팔선이라도 되는 양 서로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 선이 무너질지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로의 우주가 닿지 않는 이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책을 읽는데 내 마음을 아는 양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빌리의 아버지처럼 친정엄마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결국엔 자기만의 우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그것 이상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아니 그것 이상이 있는지 모르는 걸까? 또 한 번 엄마가 이해되면서 엄마 마음을 품어본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엄마의 우주를 존중하며 그만큼의 배려를 건낸다.
엄마에게 책 선물을 하려고 해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제 책을 가끔 빌려드리곤 했는데
엄마와 통화하면서 밀라논나님의 책이 생각나더라고요.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깐요'라는 책인데
그 책을 통해 엄마가 조금이라도 용기를 품게 되길 바라며
그렇게 제 마음을 전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