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커피나 브런치는 소통의 출구다. 관계의 장이자 남편에게 얻어 낼 수 없는 감정적 교류를 얻어낼 최고의 매개체다. 30~40대 엄마들을 주로 만나면서 결국에 얻게 되는 건 엄마들만의 연대이다.
모이게 된 목적에 따라 상이하게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이로 인한 모임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이 나음을 증명해야 하고 더불어 내 아이 역시 남보다 뒤처짐을 티를 내서는 안된다. 하지만 엄마 자신으로 맺어진 엄마들의 모임은 사뭇 결이 다르다. 거기에는 내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뿐이 아닌 너의 이야기가 되고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기에 그곳에서는 알 수 없는 위안을 얻게 되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된다.
엄마로 살아가는 당신은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가?
내가 가리어진, 아이들로 인한 모임인가 아니면 엄마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엄마들의 모임인가?
엄마로 살아가고 있지만 엄마로서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닌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건강하게 중년을 맞을 수 있고 더불어 그 이후의 삶을 가족에게 기대지 않는 주도성을 엄마 스스로 쥐고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다.
나의 엄마들의 시대는 골목에서 모여 그들 나름의 연대를 쌓으며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그만그만한 삶의 모습 속에서 그들은 괴리감을 느끼지 않고 그저 서로 위로하며 서로 품어주며 비슷비슷하게 살아냈다. 지금의 엄마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치고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엄마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연대의 힘을 찾을 수 없고 유대관계 역시 무언가 가리어진 채 맺을 수밖에 없다. 내가 너보다 못나 보이면 안 되니깐...
이럴 때일수록 건강하게 엄마들이 엄마로서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아이나 남편이 아닌 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출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식이나 정보를 채우는 자리가 아닌 지혜와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자리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야지만 나를 돌볼 수 있고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쁜 카페에서 남이 타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브런치카페에서 우아하게 나만을 위한 브런치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자꾸만 숨어버리는 나의 내외적인 아름다움의 순간을 자꾸만 마주쳐야 한다. 꾹꾹 눌러 담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언젠가 썩은 음식물처럼 올라와 나와 내 주변을 힘들게 할 뿐이다.
오늘 카페에서 엄마들을 기다리며 60대 후반 정도 되시는 젊은 할머니께서 카페 모카를 주문하셨다. 카페에 들어오는 순간 외형에 '어? 할머니가 카페에?'라는 나의 갇힌 프레임을 볼 수 있었고 카페모카를 시키시며 마시고 갈 거라는 이야기에 또 한 번 나의 프레임이 흔들렸다. 그 이후에 '와, 멋지시다.'라는 마음이 들며 부디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마시고 오로지 그 시간을 즐기시길 마음으로 바랬다. 주눅 들 거라는 마음 역시 내 프레임일 뿐이지만 그저 그분에게 편안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그분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며 추측해 보기도 한다.
평생을 여자로 살면서도 사회와 환경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건 그만큼 여자들이 관계 안에 놓인 존재라는 의미다. 여자에게 있어서 관계라는 건 곧 자신이고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장이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결의 환경과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자들의 모임은 여자에게 절대적이다. 여자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건 같은 여자일 뿐이다.
특히나 엄마가 되면서는 더 그렇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스스로 쓰나미처럼 몰려대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어려움은 그 길을 통과해본 엄마들만이 서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연대를 쌓게 되고 그 연대의 힘으로 응원을 받기도 하고 위로도 얻게 된다. 물론 파국으로 치닫는 모임도 분명 있을 테지만 애초부터 그런 모임에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포장하고 가려야 하는 부분이 대부분이었을 거다. 그 모임에서 의기양양할 수 있는 부류는 그 의기양양이 자신의 자존감인 마냥 고개를 들고 다닐 것이며 쭈글이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더라면 의기양양하고 싶어 꾸역꾸역 무엇가를 채워 넣거나 자신이 의기양양할 곳으로 모임을 옮겨 갈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코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도 없고 관계에서 오는 연대감도 누릴 수 없다.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여자 혹은 엄마라는 프레임이나 틀에 갇혀 묵히며 살지는 말자. 나로서 엄마로서 당당히 다른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남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잔 말이다. 그리고 남이 설명하는 나로 인해 상처 받지도 말고 남을 또 그 자신이 아닌 내가 설명하려고도 하지 말자.
엄마들에게 엄마들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딱 하나다.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을 만나면서 당당하게 엄마로서의 삶을 꾸려가는 주체적인 엄마들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곳에서 쌓인 연대는 나를 지키는 힘이기도 하지만 내 아이를 지키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도 엄마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연대감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주고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