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와 같은 동네에서 동갑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 얼마 전 둘째 딸 걱정에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되려 아들이 검사를 받은 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모양이다. 아주 오래된 사이긴 하지만 마음을 주고받은 적이 없기에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아들을 키워도 자주 왕래를 하진 않는다.
코로나 이후 간간히 친구 쪽에서 안부전화를 걸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아들, 딸 문제로 통화를 하면서 사뭇 마음의 결이 다름을 어렴풋이 느꼈다. 아니마 다를까. 오늘 우연히 횡단보도에서 마주치고 평소 같으면 인사만 하고 말았을 텐데, 내 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그 친구를 기다렸다. 할 말이 있었다는 듯이 그 친구가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 결과가 좋지 않아서 하루 종일 마음이 안 좋았다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순간 내 마음이 찡했다. 그 친구가 느꼈을 그 마음이 무언지 알겠기에 찡했고 그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전해주는 그 친구 마음이 찡했다. 평소 아이 키우는 육아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듯이 편하게만 이야기하는 친구였기에 오늘 나눈 이야기를 통해 '아 너도 엄마구나, 너도 아이 앞에서 마음 약해지는 엄마구나' 싶었다.
아마 오늘 친구는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거다. 병원에서 결과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수한 생각이 떠오르며 그동안의 아이를 위해 해왔던 것들이 스치며 뭐가 잘못됐을까? 어떤 부분을 엄마로서 놓쳤을까? 스스로 잘못을 헤아리며 답을 찾고 싶었을 거다. 그러다 한껏 서러움도 몰려왔을 거다.
자기 자식에게 좋지 않은 걸 줄 부모가 어디 있으며 자기 자식 잘 안되라고 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말이다. 그토록 애타게 키운 아이가 문제가 생겨버리니 서럽고 또 서러울 수 밖에... 그 마음 비칠 사람도 그 마음 이해해 줄 이도 오직 엄마라는 존재뿐이다.
엄마는 그렇다. 잘해주고도 잘못한 건 아닌지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혹여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내가 부족했구나, 내가 몰랐구나, 내가 놓쳤구나, 내 탓만 하며 스스로 자멸한다. 어쩌면 스스로를 탓할 수 밖에 없는 건 엄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엄마가 아이를 탓하겠는가? 그렇게 스스로 탓하다 보면 어느새 마구 서러워 눈물이 난다. 그 서러운 눈물 안 쏟아 본 엄마가 과연 세상 몇이나 될까?
엄마는 그런 존재다. 스스로를 탓하고 그 탓에 서러워 눈물 흘린다. 네 탓이 아니라고, 아이를 키우며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고 그 어려움에 대한 답이 없는 건 아니니 아이를 위해서 다시 엄마로서 줄 수 있는 걸 주면 되는 거라고. 지금 스스로를 탓하는 그 마음은 언젠가 아이 마음에 닿아 아이 역시 엄마 대신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으로 돌려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부모 자식 간은 탓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서로에게 가장 깊고 깊은 사랑을 주고받았기에 탓을 할 수 없다. 괜히 서러워 눈물이 날지언정, 곧 다시 사랑을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게 부모 자식 간이다. 세상에서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안되고 이유를 붙여서도 안 되는 게 부모고 자식이다. 설령 서러움에 밤을 지새울지언정 아침이 되면 또 다시 내 새끼 얼굴 보며 환하게 웃게 되는 게 엄마다. 그런 존재가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