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이야기 1.

엄마의 말

by 진주

며칠 전 친정아빠 생신이라 케이크를 만들어 가져 갔다. 생신 전날 모이기로 했는데 막내 유치원에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던지라 취소를 하고 생신 당일 평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생신축하 겸 식사를 하고 왔다.


친정엄마는 얼마 남지 않은 외할머니 생신 때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하시며 이렇게 작은 거 말고 크고 높이 해서 만들라고 하신다. 순간 기분이 나빴다. 케이크를 잘 드시지 않기에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가져왔고 굳이 이렇게 작은 거 말고라고 할 정도로 작지는 않았다. 합리적인걸 좋아하는 나로서 엄마가 더 크고 높은 거를 말하는 이유가 모시고 있는 외할머니 생신 때 형제들에게 보이기 위함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의 케이크 비교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감정이 실린 게 사실이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칭찬이란 걸 하는 분이 아니다. 내가 칭찬할 만한 거리가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탓을 하지도 않으셨다.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편이었다는 게 맞을 거 같다. 내가 아이 셋을 낳기 전에도 여전하셨다. 그러다 아이 셋 낳고 키우며 주변에서 나를 칭찬하는 소리에 마음이 조금 바뀌신 듯 하지만 여전히 자연스럽게 칭찬이나 자랑은 하지 않으신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말이다.


한 달 전쯤인가 엄마 지인분을 길 가다 마주쳤는데 그분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나를 그렇게 칭찬하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 지인분이 엄마가 딸을 참 많이 사랑하시나 보다라고 하시는데 나는 그저 웃으며 넘겼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싶으면서 엄마는 왜 나에게 하지 않는 칭찬을 남들 앞에서 그렇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날 식사자리에서는 케이크 이야기뿐 아니라 엄마 입장에서 보면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은 우리 남편과 아직은 나이가 어리기에 한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지는 않는 아이들, 나는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다이어트 중이라 적당히 먹기는 했지만 엄마 성의를 생각해서 차린 음식을 골고루 다 맛있게 먹었다. 아빠가 왜 이렇게 안 먹냐? 소리에 엄마는 '먹기는 우리 아들이 잘 먹지' 하신다. 굳이 그 자리에 없는 아들 먹성은 왜 이야기하시는지...


그날 식사자리에서 불편한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은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엄마의 심리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별 뜻 없이 아니 별 뜻있게 하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디씩이 참 마음에 박힌다. 여전히 엄마와 나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은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여전히 엄마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고 상처를 받는구나 싶으면서 여전히 내 안의 어린아이는 엄마의 인정을 원하고 칭찬을 받고 싶구나 싶었다. 엄마에게서 채워지지 못한 그 부분을 아이 셋이 된 엄마가 되었어도 허전해한다니 말이다. 언제쯤 엄마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 자유로움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증으로 모녀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부자지간의 책은 대부분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서인 경우가 많은데 엄마와 딸 관련 모녀 이야기는 대부분이 상처투성이다. 그만큼 모녀라는 끊이지 않는 고리인 거 같다. 모녀 이야기를 쓰고 해결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나와 딸의 관계를 위해서다. 엄마와 이루지 못한 관계의 어긋남을 딸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나는 대부분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엄마, 등대 같은 엄마이고 싶다.'라고 한다. 왜냐면 엄마에게 원했던 거고 원한 것을 받지 못함으로 억울한 마음이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딸들이 엄마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엄마의 삶을 보며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삶을 이루고 싶은 거다. 어쩌면 그 모자람으로 딸들은 엄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난 오랜 시간을 지나 이제야 딸로서 내 삶을 애도 중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엄마에게 상처 받는 말에 상처 받은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그 말에 수긍하며 엄마가 내비친 감정을 해결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행동으로 나가지 않은 나 자신을 보며 죄책감을 갖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나쁜 아이라서 그럴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며 엄마의 말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지 못함에 속이 상했지만 결국 내 마음이 거기까지인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 내 마음을 인정해 주기 시작하며 죄책감은 덜어내게 되고 비로소 엄마와 분리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이 마음이 쓰였지만 엄마도 엄마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마음에 대한 상처를 입어야 하는 것이다. 딸에게 서운한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지만 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엄마에게 이렇게 카톡이 왔다. 이 카톡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심 엄마가 사랑을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라는 말이 듣고 싶었구나 알아챘다. 엄마 스스로 딸의 대한 사랑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이야기가 왜 듣고 싶은지 나 스스로도 의아하지만 그냥 그 말이 듣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고 내가 엄마의 사랑을 왜곡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야 지만 내가 느낀 감정이 정당함을 이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엄마와 딸의 심리학>


유난히 예민하고 감각이 예민한 딸을 알아보지 못한 엄마의 부족함을 탓하며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바라볼 수 없게 만든 환경을 탓하며 이해해야 할까? 딸로서는 여전히 엄마가 많이 아쉽고 아쉽다. 그 아쉬움의 한 자락이라도 덜어내고자 이렇게 모녀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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