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이 아닌 원도심

#국내여행 #공주

by 은영

양귀비가 붉은 얼굴을 자랑하는 제민천에 닿았다. 올해는 지독한 가뭄으로 전국 곳곳이 시든 봄을 보냈다. 그럼에도 제민천은 얕은 물줄기를 흘려보내며 버텨냈고, 계절에 맞는 꽃을 피워냈다. 양귀비의 꽃대가 얼마나 높이 자랐는지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손을 뻗으면 꽃의 얼굴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에 그만 마음이 쏟아져 내렸다.


22_8 poppy.png 양귀비를 담은 꼴라주


나에게 있어 양귀비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나의 언어로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모두 표현하는 것은 역부족이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바로, 양귀비의 정형화할 수 없는 선에 대해서다. 가늘게 솟아오른 줄기는 손에 힘을 빼고 연필을 가볍게 쥐어 그린 선과 같다. 조금이라도 손 끝에 힘이 들어가거나 손목이 틀어지면 흑연의 자취는 경로를 이탈하기 쉬워진다. 예측하기 어려운 그 조형을 양귀비는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란 이처럼 알 수 없어야 하는 법이다. 이 선의 끝이 어디로 향하지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으면, 그 끝에 숨겨두었던 아름다움이 마침내 공기 중에 향을 흩뿌리며 피어난다.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위태로워 보이나 꼿꼿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제민천에 반해 공주에 정착하게 됐다는 어느 시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어요." 하며 제민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디에서 정착하며 살 것인가 이다. 스무 살 이후,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하며 2년마다 거처를 옮겨 다니는데 이골이 난 나는 어쩌면 그 답이 탈서울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오르는 서울 집값에 혀를 내두르며 직장에 충성하는 것이 최선인 삶은 생활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동공은 자신의 몸을 밀어 넣으며 치열하게 승차하던 기색과는 다르게 메말라 있었다. 버석하게 흐린 두 눈이 겨우 스마트폰 스크린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나면, 그들은 파랗고 빨간 가는 선이 분주한 그래프의 창을 들여다봤다. 그런 쪽에 재능이 말짱 꽝인 나는 스스로 날이 갈수록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을 채우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서울 태생이지만, 유년시절 전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서울 수저가 아이템 슬롯에서 빠진 나는 출발지점부터 불리했다. 주거로 인해 불가피한 지출이 발생하는 1인 가구로 서울에서 자취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그나마 운이 좋아 전세살이를 쭉 이어가고 있는데 은행 빚은 기본값이라 월세처럼 매달 이자가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돈을 어느 정도 모으면 조금씩 방을 넓히고 방의 개수를 늘려가며 다음 맞이하는 전셋집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러나 한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집을 만나도 어차피 내 집이 아닌 이 집은 언제든 전세금을 더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짐을 싸서 나가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공 행진하는 집값만큼 벌어들이는 돈을 늘리는 것이 마음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울의 집값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실감하기 가장 좋은 예이다. 이처럼 서울에서 안정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영위하는 지역이 서울이 아니라면? 내가 가진 문젯거리에 이 If 절을 갖다 붙이자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제주도 입도를 추진했고 예정대로라면 지금 제주도민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퇴사를 앞두고 갑작스레 다니던 직장에서 일종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있는데 그곳에 합류하는 것은 어떻냐며 말이다. 이제껏 한 직장을 8년을 다니면서 업무로 보람찼던 일이 거의 없던 터라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고민 끝에 속는 셈 치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서울살이를 연장하기로 하며 탈서울은 자연스레 유예하기로 했다. 딱 1년, 아니 길어봤자 2년이 아닐까 하며 그렇게 마지막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동시에 고민을 원점으로 되돌리며 다른 질문을 품었다. 과연 제주도가 답이었을까? 문제의 핵심이 탈서울에 있다면, 굳이 제주도가 아니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그러다 눈에 든 곳이 바로 공주였다. 지역살이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실천에 옮기는 지인의 공주 생활이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인스타그램으로 엿보는 것이 다였는데 그냥 어딘가 모르게 좋아 보였다.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저리 좋아 보이는 것인지 더는 미루지 말고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며 현충일이 주말과 연이어진 유월 연휴에 공주를 찾았다. 제민천에 만발한 양귀비에 넋을 놓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주인이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어느 가게에 발길이 닿았다. 밤에 혼자 술 한 잔 하기에 부담 없는 곳을 찾다가 알게 된 곳이었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맥주를 판매하는 곳이지만, 가게는 '술집'이 아닌 '작업실'로 끝나는 이름으로 불렸다. 제주행을 미룬 후로 회사 생활이 부쩍 바빠져 글을 한 자도 제대로 쓰기 어려웠는데 때마침 만난 반가운 공간이었다. 가게 앞에 세워진 입간판을 보며, 공주는 이 주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기 전, 분명 길을 걷다가 같은 이름의 갤러리를 본 적이 있었다. 거기는 이미정 갤러리, 여기는 미정작업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우연히 미정이란 이름을 만난다면, 그 사람에게서 공주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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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서 보낸 쓰고 읽는 시간


"공주에 여행 오신 거예요?"

여행지를 가면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나는 사실 주인에게 말을 걸어볼 기회를 틈틈이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그 마음을 읽었는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네, 아는 분이 여기 지역 프로그램을 하셨는데 공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처음 보는 그 주인에게 탈서울에 대한 원대한 꿈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두서없는 내 이야기에도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도움이 될만한 자신의 경험담을 하나 둘 풀어주었다. “이왕 공주에 관심이 생긴 거라면, 시간이 허락할 때 일이 주일 정도 길게 지내보는 것도 좋겠어요.” 하며 팁을 전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공주를 말하는 주인의 말속에 익숙지 않는 단어 하나가 내게 소화되지 않은 채 계속 맴돌았다. 우리가 지금 함께 있는 이곳, 제민천을 끼고 있는 이 일대를 주인은 ‘원도심’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주를 올 때 타고 온 버스가 나를 내려준 터미널이 있는 곳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 ‘신도심’이라 칭하면서, 이곳은 주로 그와 대조적으로 쓰이는 ‘구도심’이 아닌 ‘원도심’이라는 단어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물론 신도심의 반대말이 반드시 구도심이라는 법은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게는 생소한 표현이었다. 그 많은 여행지를 다니면서도 구도심 즉, Old Town이라는 단어에 익숙했지, 원도심은 거의 처음 듣는 말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도심이라는 말은 개발 위주의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라서 그렇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도시는 옛 것을 순식간에 새로운 것으로 바꿔버리는 식의 개발 환경으로 익숙하다. 그런 이유로 신도심은 대게 예전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없다. 논과 밭이 아파트를 세울 수 있는 땅으로 메워지고, 그 지역의 지리적 요건과 상관없이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합리적인’ 건축 양식의 상가들이 들어선다. 그다음은 인프라다. 본래 지니고 있던 지역의 고유함 위에 특정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도배되며 지역은 개성을 잃고 만다. 그렇게 옛 정취가 씻겨나간 신도심이 건설되면, 기존에 그 도시를 사회/경제적으로 활성화시키던 도심은 ‘구’라는 호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그대로 풀이 죽어버린다. 사람이 있어야만 활기가 도는 도심은 신도심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사람들이 떠나며 성장이 중단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로지 관심은 신도심으로 쏠리기에 구도심은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도 없이 방치되어 버린다. 말이 좋아야 옛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옛날의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문화에서 구도심은 더 이상 ‘옛’ 도심으로서 설 자리가 없다.


반면, 원도심은 어떤 곳일까. 원도심은 신도심이 생기며 한 발짝 물러난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구도심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공간을 영위하고 찾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르게 작용한다. 앞서 말한 구도심이 그 지역을 낡은 공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 원도심은 도시가 관통한 세월을 아끼는 마음이 발현되는 것이다. 원도심의 성장은 이제껏 그래 온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느린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버려진 구도심처럼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 도심을 이루는 사람들이 생활하며 살아간다는 생생한 감각으로 말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연결된 존재로서 서로를 인지하며 성장을 꾀하므로 개별의 존재가 돋보이려 애쓰는 경쟁이 발을 들여놓을 곳이 없다. 한편으로 옛 것을 발효시키며 새로움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성장보다 성숙이라는 말이 적절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과거와 공존하는 현재의 태도가 있기에 그 도심을 가리켜 ‘원’이라는 호를 붙여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곳이 바로 제민천이 흐르는 공주의 원도심이다. 그리고 공주의 원도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이곳을 아끼는 마음을 새로이 정착한 사람들이 이어받는다. 내가 만난 주인의 경우도 그랬을 것이다.


22_gongju-3.jpg 문 닫는 시간의 미정작업실


원도심에서 자신의 터전을 잡은 주인이 골라준 맥주를 하나 둘 비워냈다. 글을 쓰고 공주의 삶에 귀 기울이는 균형 잡힌 밤이었다. 문득 시계를 들여다보니 영업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참에 가게 정리하고 문을 닫는 것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의 머물 곳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오기까지 같이 걸었다.

“내일은 비가 온대요.”

내 말에 주인은 무척 반가워했다. 나 역시 반가운 비였다. 여행 중에 비가 오면 불평하기 십상이나 이 얼마나 기다렸던 비란 말인가.


여행자는 성실함이 필요 없다. 그 지역의 일시적인 면만 보고 무책임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연속성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여행자에게 비는 그저 오늘 하루를 망치기 좋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지를 소비의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이들의 터전으로 대한다면 여행자도 충분히 그 지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여행자에게 가물었던 봄에 내리는 비 소식에 함께 웃을 수 있는 태도가 부여된다면, 그런 여행자들로 채워지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에 있는 문제를 함께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구도심을 원도심으로 아끼는 여기 사람들처럼 말이다.




다음 날, 일기예보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명예를 회복했다. 정말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들으며 제민천을 거닐었다. 우산도 없이 시원하게 비를 맞는 양귀비는 꽃 잎이 무척 얇은데도 굵은 빗방울에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히려 양귀비의 붉은색은 더욱 생기가 돌았다.


이 비가 지나면 제민천에 다음 계절이 올 것이다. 아직 늦봄의 제민천밖에 알지 못하는 나는 이곳의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도 보고 싶어졌다. 조만간 다시 찾지 않겠냐며 자신에게 읊조렸다. 정말 이곳을 살러 올 작정으로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 어떤 신분으로 오느냐 보다 어떤 태도로 찾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제민천을 제민천답게 하는 이 양귀비를 지키는 마음만 있다면.




공주

22. 6. 4. - 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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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천 그리고 그곳에 피어난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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