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애 님에게 나를 채워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나아가고 있는 은애 님에게
은애 님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건강한 삶으로 가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아웃은 내 몸과 마음이 수용할 수 있는 업무의 총량을 넘어설 때 찾아오니까요. 이 총량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주변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채찍질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마다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 것이죠. 내가 지금 괜찮은지. 나와 하는 진솔한 대화 끝에 괜찮지 않다는 결론이 난다면 잠시 멈춰도 좋겠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달리고 있다고 해서 나와 맞지 않는 속도로 뛸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서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달려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좋고요. 주변 풍경을 둘러봐도 좋겠어요. 그러다 마음에 드는 꽃을 만나면 가까이 다가가 향을 맡으며 온기를 느껴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자신을 환기시키고 나를 풍요롭게 채워주는 순간을 만들어 주다 보면 다시 달릴 기운이 생길 겁니다.
사람들은 번아웃이 오면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번아웃은 말 그대로 소진된 상태이기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못한 상태를 의미해요. 일을 하다가 온 에너지를 다 써버렸으니까요. 그러니 번아웃이 올 때는 쉼을 통해 비우기보다 채워줘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 건강한 기운이 돌 수 있도록 나를 공급해 주는 활동이 필요해요. 은애 님도 자신을 공급해 주는 활동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잘 채워나가길 바라요.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낸다면, 자신과 한 걸음 더 친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저를 공급해 주는 활동으로 가장 손꼽을 수 있는 일은 '읽기'예요. 저는 이번 주 내내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꽤나 속상한 시간을 보냈어요.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괴로움이 더해지던 어느 날, 좋아하는 작가인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가로수길의 처음 방문한 비건 카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그 소설을 읽었어요. 자전적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무척 좋아하는 터라 이번에도 기대감을 잔뜩 품은 채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단숨에 읽어낸 소설의 마지막 장을 닫을 때, 가슴이 부풀어 오르듯 팽창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풍성하게 잘 차려진 식사를 밥 한 톨도 남김없이 꼭꼭 씹어 소화시킨 것처럼 든든했고요. 울적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금세 사라지고 말았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읽기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요.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는 카페를 나섰더니 그새 비가 왔는지 길이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밖에 비가 오는 줄도 읽었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놀랐고요.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버린 그때, 꽤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를 채워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이죠.
사실, 최근 몇 년 간 읽기는 강박적으로 행한 일에 가까웠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퇴근 후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읽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러나, 무언가를 쓰고 그리려면 이 역시 채움이 필요하기에 읽기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읽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까 고민하던 차에 생각해 낸 것이 통근 시간을 활용하자는 것이었어요. 서울에 있던 디자인 연구소를 다닐 때는 통근 시간이 2시간 정도였고 본사가 있는 수원사업장을 다닐 때는 3시간 반 정도 통근 시간이 걸렸는데 이른 시간에는 아침잠을 쫓아내며 읽고 퇴근 후에는 피로가 몰려와도 읽기를 놓지 않았어요. 그렇게 읽다 보니 한 해에 7~80권은 거뜬히 읽게 되더라고요. 완독을 한 책의 수를 셀 때마다 앞자리 수가 바뀌어가며 쌓이는 숫자에 기대어 안도했습니다. 부족한 시간에도 성실히 이만큼이나 읽어냈다고 자랑할 만큼 말이죠.
그러나, 그 시절은 제게 읽기의 즐거움을 상실한 지난 몇 년이었습니다. 맞아요. 오늘은 몇 장을, 이번 달에는 몇 권을 읽었다는 식의 계산법은 책을 읽으며 드는 기쁨을 측정할 수 없는 노릇이죠.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읽었다는 사실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읽지 못한 날에는 불안했습니다. 게다가 피로한 눈으로 훑어낸 문장이 뒤죽박죽 섞여 머리에 들어차도 제대로 정렬을 맞추지 않은 채 책장을 넘기기 일쑤였고요. 왜냐하면, 저는 읽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반드시 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사고가 읽기에 지속적으로 적용되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커져만 갔어요. 마침내 읽기가 어떤 상황에서든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퇴직 후, 더는 통근 시간이란 것이 없어진 저는 자연스럽게 읽기와 멀어졌습니다. 여태 통근 시간을 빌미로 읽어온 것인 양 말이죠.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웠더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책을 펼쳐 읽었을 텐데 아쉬웠어요.
이번에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를 읽으며, 제가 잊고 있던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되찾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지친 상태에도 흔들리는 출퇴근 버스 안에서 나를 소진하듯 읽었던 지난 몇 년과 사뭇 달랐으니까요. 편안함을 주는 장소에서 오래 머물며 소설을 읽으니 충전된 기분이 저를 메웠어요. 거리를 나서는 제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고요. 읽기가 다시 채움의 요인으로 제 마음에 자리 잡으며 마음의 중심을 세워준 순간이었습니다.
잘 채워진 마음 덕분이었을까요? 어제는 원래 하려던 일을 잠시 미루고 그림을 그렸어요. 최근 계속 비가 와서 구름에 해가 가려져 있었는데, 오후부터 간헐적으로 햇빛이 창 안 쪽에 맞닿아 있는 작업대에 들더라고요. 구름 사이의 빈틈을 놓칠세라 드는 빛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따듯한 햇살을 담뿍 받으며, 다가오는 4월 3일, 제주 4˙3을 기억하며 헌화하듯 동백꽃 콜라주를 작업했습니다. 추모의 마음이 바다 건너 제주에 닿길 바라면서요.
다음 주에는 테라스의 텃밭에 파종을 하려고 해요. 이번 주 내내 내리는 비를 보며, 아차 하며 늦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조급함은 거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저 제게 맞는 속도로 움직이면 되니까요. 다른 밭보다 싹이 늦게 트고 꽃과 열매가 늦게 맺는다 하더라도 틀린 법이 아니죠. 삶에는 정답은 없고 선택만 있으니까요.
2024. 03. 30.
다음 읽을 책을 고르는 아침,
은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