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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Apr 14. 2024

우연히 찾아오는 작은 행복

일상에 스며든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 보기

늘 응원하는 은애 님에게


은애 님의 소식에 무척 반가웠어요!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은애 님이 어떤 결정을 하든 응원한다고. 진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은애 님이 오롯이 은애 님만을 위한 선택을 하기를 바랐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 마음은 은애 님이 휴직을 했으면 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까요? 은애 님이 휴직원을 작성했다는 소식에 제 일처럼 기뻤어요. 정말 축하합니다, 진심으로요!


편지를 읽으니 좋은 순간으로 채워갈 은애 님의 시간이 벌써 그려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은애 님이 이미 행하고 있는 좋아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제게도 전해지기 때문이겠죠? 그 덕분에 저 역시 지난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살펴보게 되었어요. 일상에 스며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 있었는지 말이에요.


집에서 수 분이면 닿을 수 있는 등산로 입구에 벚꽃, 개나리, 조팝나무 꽃이 폈어요.


이번 주에는 유난히 산을 자주 다녔어요. 평소에도 산을 종종 가지만, 이번주는 더 자주 간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집은 등산로 입구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날이 따듯해지며 자연스럽게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등산로 초입에서 어느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 아저씨께서 화살나무의 잎을 따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잎 덕분에 관상용으로 알려진 화살나무의 잎을 따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의 질문에 아저씨는 밝게 웃으며 답을 해주셨어요. 이 시기에 나는 화살나무의 여린 잎은 봄나물로 아주 좋다고 말이죠.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잎을 만져보니 제가 아는 잎과 달리 정말 야들야들하더라고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간장으로 무쳐먹으면 맛있다는 말에 군침이 돌아 저도 모르게 잎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이따 시장에서 장을 볼 때 비닐봉지 대신 쓰려고 가져온 양파망에 담기 시작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냉이된장찌개를 끓일 생각이었는데 반찬으로 뭘 해 먹을까 고민하던 차였거든요. 그 고민이 해결된 기분이었어요.


"젊은 분이 이게 나물인 줄 어떻게 알았대요?"


그때 먼발치에서 화살나무 여린 잎을 따는 아주머니가 제게 말을 걸어오셨어요. 아주머니의 말처럼 젊은이가 산에서 나물 뜯는 모습이 신기하셨나 봐요. 아주머니는 잎을 씻을 때, 꼭 거름망을 써야 한다고 일러주시며 간장보다 고추장 무침을 하면 더 맛있다는 팁도 일러주셨죠.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시겠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저는 긍정했습니다. 게다가 아주머니의 비닐에는 프로답게 이미 여린 잎이 한 가득히 차 있었어요.


"벌써 그만큼 따신 거예요? 부러워요!"


채집 실력자인 아주머니께서는 초보자인 저를 위해 그새 따신 여린 잎 한 주먹을 제가 들고 있는 양파망에 넣어주셨습니다. 부럽다고 하길래 따주는 거라며, 자신의 친절을 애써 포장하시기도 했고요. 감사하다는 제 말에 부끄러우신지 저를 앞질러 산을 오르시는 아주머니를 좇아 산길을 한동안 함께 다녔습니다.


이렇게 된 김에 화전도 부쳐먹겠다며 진달래꽃을 따는 저를 보고 아주머니께서는 꽃이 탐스럽게 핀 진달래나무를 찾아주시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꽃을 거의 다 떨어트린 나무를 골라 찾아다녔습니다. 하루 이틀 뒤면 꽃을 모두 떨어트릴 나무의 꽃을 따는 것이 마음이 편했거든요. 혼자 살다 보니 한두 끼 정도의 꽃이면 되겠다 싶었고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생각될 때, 그 아주머니와 갈림길에 서게 되었어요. 아주머니께서 물을 뜨러 가시는 길이 제가 가려는 길과 달랐기 때문이에요. 저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산길로 점차 걸어가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 나도 그곳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가보지도 않았는데 몰랐던 길을 벌써 배운 것처럼 뿌듯했어요.


산에서 만난 아주머니께서 제 양파망에 화살나무 여린 잎을 채워주셨어요.


"사장님, 찹쌀가루 있어요?"


산에서 내려와 시장에 들러 자주 찾는 떡집 사장님께 말을 건넸습니다. 그때, 제 옆에 계시던 어느 할머니께서 대신 대답을 하셨어요.


"어머나, 방금 나도 찹쌀가루를 샀는데."

"정말요? 저는 이따가 화전 부쳐먹으려고요."

"나는 쑥전 해 먹으려고."


쑥전을 해 먹으려고 찹쌀가루를 샀다며 말씀하시며 할머니께서 미소를 지으셨어요. 그 미소에 기분이 좋아져 계산을 기다리는 사장님을 새까맣게 잊은 채 할머니와 이따가 차릴 저녁 밥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눴습니다. 사장님께서 찹쌀가루를 다시 냉동실에 넣는 것을 알아챘을 때서야 대화가 너무 길어졌다는 걸 알았거든요.


냉이철 끝무렵이라, 시장에서 어렵게 찾은 냉이를 삼천 원어치 사서 집으로 가는 길에 이날은 평소보다 행복의 농도가 더 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순간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날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낯선 사람들인데도 자주 본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웃과 함께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이에요. 이웃이 일러준 대로 나물을 뜯고, 이웃과 함께 산을 걸으며 일상을 나누고, 이웃과 서로의 저녁밥상을 공유하며 공통점을 찾아봤습니다. 소소한 일상이 풍부해지는 건 어쩌면 사람들과 나눈 작은 대화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연히 찾아오는 작은 행복의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인데 봄 꽃이 핀 것처럼 행복이 가득 피어나는 것 같아요.


진달래화전, 화살나무 여린 잎 무침, 냉이된장국으로 차린 봄기운 가득한 저녁 밥상이에요.


은애 님이 맞이할 시간에도 이런 행복이 가득하겠죠? 아이들과 나누는 진한 대화, 저와 주고받는 편지, 그리고 은애 님을 채워줄 여러 순간들을 기대합니다. 은애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각자 좋아하는 순간에 대해 적어본 목록을 나누는 때도 기다려져요. 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은애 님의 귀한 시간을 채우는 일에 저도 종종 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그런 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오늘도 은애 님과 편지를 쓰고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2024. 04. 12.

여백의 시간에,

은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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