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위한 기도

지금 여행을 한다는 것

by 은영

내겐 어느 여행지를 가든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가까운 성당이나 교회에 들려 기도를 하는 것이다. 외숙부께서 목사님이신 3대 기독교 집안의 모태신앙 출신이다 보니 기도하는 것은 내게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도는 내게 신앙의 깊이와는 상관없는 그저 습관적인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간에 기도란 내게 익숙한 일이며 또,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홀로 다녀온 한 달 간의 유럽여행이 그 시작이었다. 유럽의 어느 도시든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관광지에는 성당과 교회가 빠지지 않는다. 하늘을 높게 찌르는 첨탑 주변으로 종교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인파 속에 나 역시 있었다. 예배당에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여행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인턴 디자이너로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계획했던 유럽여행. 회사 정규직 선배들의 유럽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설렘은 날로 커져만 갔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서울에 있었는데 어떻게 파리에 올 수 있었을까. 스스로 해내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사한 마음이 솟아났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기도로 옮겨 보았다.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은 기도였다.


나는 제주의 첫 여행에서 이타미준의 건축물로 알려진 방주교회를 찾았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평소 예배를 잘 참석하지 않는 죄책감을 덜기 위함일까. 나는 제시간에 맞추어 방주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유명 건축가가 지었다는 것이 실감 나는 아름다운 방주 형태의 예배당에 들어섰다. 십자가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색 LED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의 자연을 투영하는 디자인도 멋드러 졌음은 물론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광경 또한 한 편의 작품과 같았다. 특히, 성가대의 찬양 소리는 잠시 나를 다른 세계에 옮겨 놓기도 했다. 축도가 끝날 무렵 나는 기도했다. 오늘 이 여행이 내게 허락되었음에 대한 감사를.


21_5 church-1.png 제주의 방주교회


그 날 이후로 나는 늘 제주에 올 때마다 방주교회를 찾는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문에서 한림으로 넘어가는 길, 그 사이에 있는 그 교회에 잠시 멈추었다.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온전히 감사의 말로 채워 기도했다. 이 기도에는 그 어떤 대상도 필요가 없다. 나 스스로가 여행이라는 소중한 시간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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