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설명해주는 ‘일’에 대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찾는 모임이 많은 편이다. 어느 모임이든 첫 시작을 맞이하면 으레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바로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것. 대답의 패턴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이름과 사는 곳, 요즘 관심을 두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리고 ‘하는 일’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무슨 일을 하는지 빠짐없이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렇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요.”
내 답은 대게 이렇게 정해져 있다. 나에게도 자기소개란 내가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한 기업의 UX 디자이너다.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이 회사에 소속되어 맡은 과제의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그 일은 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수입과 복지를 제공해준다. 더불어 보람을 느끼기도 불가피한 고통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할 때는 이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 일을 말하는 건 어째선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설명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이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일이 나를 얼마나 투영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 가깝다. 내게 그 어떤 대가와 직함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는 일은 디자인을 하는 일보다 나를 잘 표현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어떤 재료를 선호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그리는 대상을 대하는지, 어느 계절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때 나는 어떠 기분이 드는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 일이다. 이렇듯 순수하게 ‘나’라는 사람을 주제로 대화를 열 수 있게 하는 활동이 내게는 ‘일’이다.
나라는 존재와 맞닿아 있기에 이 일은 매일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당연히 보람되는 일이다. 때때로 고통을 마주하더라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마음마저 든다. 그만큼 애착이 있다. 중요하다는 문장 그 이상의 표현이 따른다. 진지한 태도는 필수적이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정성을 쏟는다. 더 나아지기 위해, 성장을 도모하는 것. 다른 일이 아무리 돈을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설명할 때, 나의 일은 거기에 있다.
며칠 전, 서울에 한 차례 소나기가 내렸고 사람들은 하늘에 뜬 무지개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늘 밤 그날의 감상을 그림으로 담아보려고 한다. 또, 누군가와 이 그림으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내가 그린 무지개로 나의 일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