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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방 Jun 19. 2024

생각 하나. 어른이 된다는 것

주제와 기한이 정해지고 나니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한 문장을 쓰고 메모장을 닫았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 그대로 일주일을 흘려보냈다.


D-Day

미뤄두었던 숙제를 다시 꺼냈다. 학창 시절 과제제출 마지막날의 초조했던 마음을 오랜만에 느끼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대체 무엇일까? 막막한 마음에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기 위해 국어사전을 열었다.


[어른]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어른이라는 건 사전에서조차 한 줄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단어인가 보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과연 어떤 정의에 가까울까?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때
어른이 되는 것일까?​



문득 수업시간에 배웠던 매슬로우의 욕구 계층이 떠올랐다. 아래에서부터 1-4단계 욕구는 유아기~청소년기에 형성되는 것 같은데, 어른이 되면 5단계 욕구를 충족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실현의 욕구(5단계)

가장 높은 수준의 욕구로 아름다움, 신뢰감, 정의에 대한 욕구. 자신의 가장 높은 차원의 잠재적인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만족을 얻게 되는 것.


가장 높은 차원의 잠재적인 능력은 무엇일까. 만약 내 잠재능력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는 영영 아이로 남아있어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가설을 잘못 세운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해낼 때
어른이 되는 것일까?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해내는 자기실현보다는 하기 싫은 것을 해내야 할 때, 그제야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설득력 있는 명제인 것 같은데?


(사진출처 pinterest)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여유롭게 살아가던 사람이 결혼 후 절약하기 위해 고통받을 때, 가정의 재정문제는 덮어두고 싶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을 때, 직장 상사의 괴롭힘 속에서도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견디며 출근해야 할 때.


어른의 첫 번째 정의를 보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여러 가지 책임질 상황에 당면했을 때, 이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인생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명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집어 말하면 고통을 감내하는 삶이 아니라면 어른일 될 수 없다는 뜻이 될 테니까. 점점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




사랑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른의 세 번째 정의 ‘결혼을 한 사람’에 내 시선이 머물렀다. 예로부터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결혼에 그토록 많은 의미부여를 했을까?


매슬로우의 이론이 떠올랐던 것처럼 갑자기 <어린왕자> 책 속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왕자는 사막에서 여우를 만났을 때 ‘길들이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지 마. 네가 길들인 것은 영원히 책임져야 하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한 책임이 있어?

(사진출처 pinterest)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고 그 존재에 의해 상처받고 자신의 사랑에 의심이 생기고 그럼에도 서로에게 길들여져 서로를 책임질 때, 더 나아가 아이라는 사랑의 결실이 생기고 새 생명을 책임지고 길들일 때.

아, 어른이 된다는 건 사랑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게 됐을 때구나!

사전적 의미가 그냥 도출된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여 ‘부모가 된 사람’으로 재정의 하고 싶다. 하나의 생명을 보살피고 길들이고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는 존재는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요즘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간 ‘진정한 어른’이 될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오랜만에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와야겠다.



나방의 글을 읽은 친구들의 생각


오이미

너의 생각이 확장되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매슬로우 이론부터 당장 삼십 대인 내가(우리가) 당면한 현실상황, 어린왕자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조합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따름.


사랑의 무게를 견딜 때 어른이 되는 거라는 문장이 나에게는 충격이었어. [책임]을 다소 고단한 측면에서만 봐왔나 봐. 나 아닌 존재에 대한 사랑과 숭고함을 잊고 있진 않았나 생각하게 됐어. 결혼을 하면서 임신과 출산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어서 그런지 느끼는 바가 더 크다. 좋은 글 고마워!



켱니

정말 다각도로 생각했다. 어학사전도 어른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말에 공감하고 갑니다. 이 글쓰기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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