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강내유형 인간입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을 지향한다. 이를 지향한다는 건 내가 현재 그러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선이 굵은 외모 때문인지 또박또박한 말투 때문인지 나는 줄곧 ‘강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만만해 보이기 싫어 이런 평가가 싫지는 않았지만 “나방은 이런 거에 상처 안 받아~”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속으로 되뇌었다. 강하고 부드럽고를 떠나 상처받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먼저 바라보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연약함과 취약함을 상대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다. 상대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그토록 집요하게 남들의 모습을 파고들고 판단하는데만 열중하다가 오히려 큰 상처를 입는다. 마음껏 부드러움과 연약함, 취약함을 드러내라.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상대는 마음을 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더 활짝 마음을 연다. 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타인을 따뜻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우연일까? 때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답을 제시했다. 역설적으로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를 사랑하고 인정하라는 말. 상대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강하게 보이고 싶어 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정한 강자는 외유내강이 맞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는 책의 구절이었다.
하지만 이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법인데, 이미 상처받은 내 마음은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떻게 상처를 회복해 왔는지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 글을 쓴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정제시켜 준다. 여러 감정으로 휘몰아쳐있는 내 마음을 고요하게 진정시킨다.
1. 종이를 꺼내 끄적여본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도 좋다.
2. 감정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간다. 이 순간만큼은 내 글의 독자는 나 자신뿐이다.
3.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한다. 관계한 인물의 상황을 관찰해 본다.
4. 시간을 가지고 써 내려간 문장들을 읽는다. 거친 표현은 다듬는 과정에서 내 마음속 거친 감정들도 쓸려 내려간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초연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글에 남겨 마음에서 덜어버리면 종국에 요동치던 마음은 차분해진다.
둘, 잠을 잔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잠을 잔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잠을 청한다.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어느새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뜨면 개운해진다.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에 잠을 통해 이 생각에서 벗어난다.
셋, 청소를 한다
주변이 어지러우면 마음도 덩달아 정신이 없다. 그럴 때면 몸을 움직여 정리를 시작한다. 물건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쓸고 닦고, 환기를 시키다 보면 어느샌가 청소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깨끗한 집을 보고 있을 때면 덩달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글을 쓰며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는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친 마음에 환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렇게 알았다.
인간관계에 지쳐 얼룩덜룩해진 요즘 내게 정말 많은 깨달음을 주는 주제였다. 친구들의 글이 너무 기다려진다. 다들 어떤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을까? 좋은 방법이 보이면 따라 해봐야겠다.
나방의 글을 읽은 다른 친구들의 생각
됴니 :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인용문의 첫 문장을 한참 보고 있었어.. 상처를 받지 않는 게 사실 가장 어려운 것 같은데... 상대를 인정하라는 말, 정신승리를 하던 나와는 상반되는 해결책이다. 성숙한 사람의 해결방법이겠지?
글을 쓰는 방법 진짜 좋다고 생각해. 마침 네가 레삐에게 잘 울지 않는다는 댓글을 읽었는데, 글을 쓰는 방법으로 나방도 나방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아. 잠을 자는 방법은 제일 부러운 방법인데 나는 잠을 자고 싶을 때 잠드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부러운 방법이다. 청소를 하는 방법은 잠보다 더 부러운 방법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다들 공통적인 건 친구들의 해결방식이 너무나도 궁금하다는 것!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 다들 건강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다행이야!
나방 : 나도 내가 인용해 둔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 상처를 받지 않는 단단한 내면으로 나를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 누가 나를 찌르더라도 나는 괜찮다는 태도와 자세!
지난주에 상담선생님에게 나의 3가지 방법을 말씀드렸더니 ‘정리’라는 행동을 통해 내가 스트레스를 회복하고 있는 거라고 하셨어. 방식은 다르지만 행위의 목적이 같았나 봐. 그래서 나에게 ‘정리’라는 행동이 진짜 중요하구나를 깨닫게 됐어! 내 생각엔 친구들도 각자 자신에게 중요한 본질의 행동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걸 찾아보면 좋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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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미 :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와 저 구절 보고 띵 했어.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전전긍긍했던 것도 공감되고 말이야. 근데 이미 상처받은 내 마음은 어쩌지? 하는 나방 말에 또 한 번 울림이 있었다. 그렇지, 아무리 커다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결국에는 상처를 인정하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 같아.
네 글을 보면서 생각이나 환경을 전환, 바꾼다는 점에서 내가 선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특히 글로 정리하면서 선후관계를 살피고 감정을 정돈하는 건 차원이 다른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생산적이고 진취적이라고 해야 할까?
나방 : 이미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해야 내가 상처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다년간의 상처를 통해 배운 거 같기도 해.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트라우마에 기반한 것들을 건드릴 때 상처가 생기는 거 같아. 사실 다른 것들은 무관심해서 상처인지 아닌지 모르고 넘어갈 때도 많은 것 같은데 말이야.
오이미에게는 ‘전환’의 방식, 나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나는 ‘정리’를 해야 끝이 난다는 점? 글을 써서 생각을 정리하는 거고, 잠을 자면서 또 무의식의 생각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면서 주변을 정리하고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나는 이 상황이 정리가 되어야 상처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나 봐.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환도 맞는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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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솜 : 나방의 글을 쓰는 방법은 어쩌면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해. 나는 그림이 나와 결을 같이하는 도구 같은 느낌이 들거든. 나를 속일 수 없는?
그림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어서 어떨 땐 그냥 종이에 슥슥 그리는 것만으로도 뭔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그게 뭔지는 언어로 정리가 안 돼서 말로는 차마 아직 설명이 안될지라도 뭔가 뻣뻣하게 굳어있던 무의식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랄까) 언어로 정제해서 나오는 것들은 "생각"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하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기에 또 그 나름의 장점이 있는 기분이랄까. 물론 글을 쓰면 또 글을 쓰는 대로 내 마음이 의식 속에서 정리되는 것도 있지. 그럼 한결 명료해지고. 그림은 뭔가 명료하지 않은 걸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느낌이고, 글은 머릿속에 떠있는 부유물들을 잡아내려서 하나로 정리하는 과정 같은 느낌?
어찌 보면 이번 주제가 또 그런 식으로 내게 큰 의미가 되어주기도 했고. 둘 다 삶에서 다른 방식으로 좋고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방 글을 보며 나는 감정의 환기를 위해 어떤 방법들을 쓰고 있을까? 를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어!
나방 : 나도 재주가 있다면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 그림은 쉽지 않더라고. 그래서 가끔 이미 그려진 그림에 색을 칠하는 행위를 할 때가 있는데 네가 말하는 그 언어로 정리가 안된다는 행위가 뭔지 알 거 같아! (글은 아무래도 생각이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오이미가 말하는 그 검열의 순간을 꼭 지나게 되더라고. 그래서 그림이나 색칠이 더 좋은 방법인 거 같기도 해)
감정의 환기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고 있는지 관찰해 봤어?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