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 So Sweet to Walk with Jesus
위 제목은 2월 8일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 부른 찬송가 430장의 제목이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Tis So Sweet to Walk with Jesus)'이 찬송가는 1절부터 4절까지 후렴구를 포함한 모든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Tis'의 뜻이 궁금했고, 'So Sweet'의 표현이 흥미로웠다.
[ 'Tis So Sweet to Walk with Jesus'의 뜻은? ]
1. 'Tis = It is (고어/시어체 표현)
So Sweet = 매우 달콤하다, 참으로 기쁘다
To Walk with Jesus =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 (동행하는 것)
2. 전체 의미는 :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또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참으로 달콤하다."
3. "walk with Jesus"는 단순히 걷는다는 뜻이 아니라, 삶 속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신뢰하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의미한다.
영어 제목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걷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달콤한 일)이다."라고 결과까지 표현하였는데, 한글 제목으로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으로 끝냈다. 한글의 제목만 보면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이지?'라는 의문(궁금증)이 들게 한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
[ 이렇게 번역을 한 이유는? ]
1. 이건 단순 번역 문제가 아니라 찬송가 번역 원리 + 음악적 제약 + 당시 번역 관습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 직역이 아니라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번역”이었기 때문
- 원제 : 'Tis So Sweet to Walk with Jesus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은 참으로 달콤하다)
-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은 참으로 즐겁도다"처럼 되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찬송가는 읽는 문장이 아니라 부르는 가사이기 때문에 번역자는 다음을 고려해야 했다 : 음절 수, 강세 위치, 멜로디와의 일치, 운율.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은 참으로 즐겁도다"는 음절이 많고 멜로디에 잘 맞지 않다. 그래서 제목이자 첫 소절을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처럼 열어두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나. 한국 찬송가 번역의 특징 : "정서 중심" 번역
- 19~20세기 초 찬송 번역은 문장 완결성보다 정서와 묵상 여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어 제목은 설명문이 아니라 묵상 주제처럼 제시하는 방식이다.
- 예를 들면 :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예수 따라가며" 이것들도 모두 완결된 문장이 아니다.
- 즉,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그것이 어떠한가?)"라고 질문을 던지듯 시작하고 이어지는 가사에서 답을 준다 : 즐거운 일 아닌가
다. 첫 줄 구조 때문
- 1절을 보면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 즉 제목은 사실상 1절 첫 줄의 앞부분만 따온 것이다. 한국 찬송가는 종종 첫 줄의 일부를 제목으로 삼았다. 영어는 문장 전체를 제목으로 쓴 것이고, 한국어는 첫 구(句)만 제목으로 삼은 차이다.
라. 신학적·문학적 뉘앙스 차이
- 영어는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다 : So Sweet (참 달콤하다)
- 하지만 한국어 번역은 조금 더 은근하고 묵상적인 표현을 선호했다. "달콤하다"는 표현이 당시 한국 교회 정서에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일 아닌가"처럼 완곡하게 번역한 것이다.
2. 정리
영어 제목 / 한국어 제목
결과까지 말함 / 주제만 제시
감정 직설적 / 묵상형, 여백 있음
완전한 문장 / 구(句) 형태
=> 그래서 한글 제목은 의도적으로 "열어 둔 표현"이며 1절에서 그 답을 말하도록 구성된 것이다.
간혹, 독자들 중에서 내가 영어표현과 한글표현을 왜 굳이 따지는지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내 성격인 것 같다. 무엇인가가 궁금하다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다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꼭 그렇지 만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늘 열려있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따진다기보다는 '왜 이렇게 표현했지?'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해서 계속 꼬리의 꼬리를 물고 파고들면 나도 모르게 내 지식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나중에 그 궁금증의 답을 잊고 추후에 또 궁금하더라도. 그리고 영어표현과 한글표현이 다른 것을 찾게 되면 흥미롭고 예배시간에 집중도 잘된다. 그리고 어떤 날을 영어표현 덕분에 목사님의 설교도 더 잘 이해가 되는 날도 있다. 결국은 내 성격이다.
(다시 찬송가로 돌아와서) 맞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가사에는 없지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주와 같이 동행하는 것을 믿고 있는가?'이다. 당연히 믿는다. 저와 늘 함께하시는 주여, 주의 손으로 절 이끄시고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동행하겠나이다.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주와 함께 걸어가겠나이다. 함께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