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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효 Oct 01. 2019

여행 = 사람

2015년 3월, 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미국 동부에 갔다. 미국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처음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출발지에서 비행기가 연착되어 스케줄이 꼬여버렸고, 내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기록적인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뉴욕 시내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갔다. 승차권을 사기 위해 무인매표기를 찾았다. 10달러를 티켓 머신에 넣었다.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내 돈을 인식하지 못하고 도로 뱉어냈다. 다른 돈을 넣기 위해 먼저 넣었던 돈을 빼려고 했다. 


힘껏 당겼는데 어처구니없이 돈이 찢어져버렸다. 정확하게 반만 나와버린 거다. 남은 반쪽은 그대로 끼어있었다. 남은 반을 빼려고 했지만 잡을만한 틈이 없었다. 그러곤 10초 정도 지났을까? 남아있는 내 돈을 꿀꺽 삼켜버렸다. 물론 티켓은 안 주고 말이다.    


잘린 10달러


황당했다. 바로 뒤에 있는 역무실로 갔다. 무섭게 생긴 거구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반쪽 10달러를 들고 가서 방금 일어난 사건을 설명했다. 그는 무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곤 내게 말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인 매표기에 보면 연락처가 적혀 있다. 네가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라" 


응? 뭔가 자기 일을 나한테 미루는 느낌이 들었다. 돈을 날린 건 둘째 치고, 그가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일단 하라는 대로 했다. 무인 매표기에 적혀있는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이메일도 보냈다.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자기도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어이가 없었다. 뉴욕에 처음 도착해서 겪은 일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견이 생겼다. '미국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구나.' 여행을 하는 동안 뭔가 모를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지갑을 열 때마다 반으로 잘린 10달러가 신경 쓰였다. 공항에 가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은행에 들렸다. 반을 주면 5달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은행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곤 혹시 5달러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은행원은 미안하지만 은행에선 바꿔줄 수 없다고 했다. 


체념했다. 알겠다고 하고 나가려는 순간. 은행원이 나를 다시 불렀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무실로 가서 자기 돈 10달러를 들고 나왔다. 나한테 10불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우리 은행에서 주는 건 아니야. 나는 미국 시민의 한 명으로써 네가 우리나라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갔으면 해. 너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니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

괜찮다고 했지만 꼭 받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감동이었다. 그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 미국 시민으로 자기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이전까지 있었던 안 좋은 기억들은 눈처럼 다 녹아버렸다. 그녀가 내 여행을 바꿔주었다.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간의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하면서 진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사람'이었다. 어디를 갔는지 보다, 누구랑 함께 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여행할 때 만난 한 명의 사람으로 인해 그 나라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걸 이때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미국을 생각하면 그녀가 먼저 생각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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