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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Mar 19. 2019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사이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남녀 간 성 대결, 동성애 대립, 색깔 논쟁, 세대 갈등.. 대한민국은 지금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의 투쟁이 한창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무려 3년 전 집필한 문유석 판사는 어쩌면 한편으로 흐뭇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진통이 그가 꿈꾸는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로 나아가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면.

 책 머리말에서부터 그는 가족이나 사회 등 집단을 우선시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고, 이런 부조리 속에서 스스로는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개인’으로서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판사로서 바라본 한국, 자녀의 학부모로서 느낀 현재,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건너 들은 일상 조각들, 그리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느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집단’이라는 괴물이 개인을 삼키는 기이한 현상을 지적한다. 수직적 가치관에 갇혀, 제 자신이 진짜 열망하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틈도 없이 소위 말하는 스카이 대학을 갈망하며 성장해온 우리의 현주소, 획일화된 성공에 대한 그릇된 집착, 경쟁 과열이 그것이다. 서열 속에는 또 다른 계층으로 세분화된 등급으로 서열을 매겨 조금이라도 더 위에 서기 위해 남을 짓밟고 업신여긴다.

 문유석 판사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가? 본질로 돌아간다. 준거 집단에 따라가기 위해 아등바등 기를 썼다면, 눈을 돌려 개인인 ‘나’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말대로, 집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할 쯔음, 판사는 또다시 질문한다. 무엇을 위해 당신은 남을 짓밟았는가? 무엇을 위해 받은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되갚으려 했는가? 첫 번째 질문에서 비로소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두 번째 질문을 말미암아 또 다른 개인인 ‘타인’이 보인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나 때문에 아파했을 사람들이 말이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 소셜에서 <자유주의자 선언>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문구다. ‘집단’이라는 괴물 앞에서 고개 숙일 수밖에 없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테니, 만인의 공감을 샀을 테다. 하지만 <자유주의자 선언>이 이 세 문장으로 축약된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 책은 저 문장들처럼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개인들이 사회에 부딪힐 때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는 탈무드에 가깝다. 그가 말하는 “톨레랑스”- 즉 ‘다름’이라는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알려준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셈이다.

그 실질적인 방법들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 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 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 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말이 흉기다, <개인주의자 선언> 중

“인간의 감성적 직관적 측면이 거대한 코끼리라면 이성적 측면은 거기 올라탄 작은 기수라고 비유한다. (중략)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자유주의자 선언> 중

책에서 나와 다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자. 확실히 문유석 판사가 책을 냈던 3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싫은 건 싫다고 외치는 개인들이 많아졌다. 좋은 신호다. 하지만 오늘날의 논쟁은 건강한가. 비판하고 건설적인 논쟁을 통해 공존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 힐난하고 비난하며 또 다른 서열 싸움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 개인주의 사회와 이기주의 사회의 사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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