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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Mar 18. 2019

마음 놓고 망치는 용기

 어쩐지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겨웠는지, 무언의 표현 욕구가 들었는지.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뭘 그려야 할지는 모르겠고,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홍대의 작은 작업실을 찾았다. 하이퍼 리얼리즘 화가와 함께 인물을 마치 사진처럼 리얼하게 그리는 클래스에 들어갔는데, 나는 고민하다가 당시 교양 과목에서 과제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렸다. 


 제법 그럴싸한 스케치에 만족하면서 밑그림으로 옅은 명암을 깔았는데, 그 후로는 영 진도가 안 나갔다. 내가 계속 깨작대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와서 "가장 어두운 곳부터 명암을 과감하게 깔고 들어가라"고 조언을 했다.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을 서성이다,

"못 하겠어요."

하고 말했다.


"왜요?"

"망칠까 봐서요."


선생님은

"망치면 왜 안 돼요?" 

라고 되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망쳐요? 이번 목표는 화끈하게 망치는 거예요. 이걸 아주 망쳐버리겠단 생각으로 과감하게 깔고 들어가요, 우리. 알겠죠?"


 그동안 망칠까 봐 주저했던 게 오히려 일을 더 그르치진 않았을까. 나는 그날 끝끝내, 지금까지는 꽤 마음에 드는 이 스케치를 망칠까 봐 선을 과감하게 깔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잘해야만 한다", "망치고 싶지 않다"는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게으른 완벽 주의자'라고 표현하던데, 그 말이 내 정곡을 콕 찔렀다. 


 이번 100일 프로젝트의 목표는, 아주 망쳐버리는 거다. 똥글을 매일매일, 부지런히도 써 올리겠다. 5년 전에는 끝끝내 하지 못했던 '망치기'를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로 다부진 목표를 세우지도 않고, 그저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련다. 아무런 목적이나 방향 없이도, 그저 몸이- 이번 경우엔 내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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