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우리집이 되어버렸네 (2)

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집 근처에서 모유수유 교육이 있다길래 친정 엄마와 함께 다녀왔는데 접이식 바운서도

선물로 주셔서 가방에 들고 오는데 하나씩 아기 용품이 생기는 거에 신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아기가 하루하루 잘 크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몸무게는 계속 해서 줄어들었고, 병원에서는 조금씩 자주 먹으라고 하셨지만 자주 배가 뭉치면서 소화는

더 잘 안 되어갔고, 그러면서 음식을 섭취하는 양은 더 줄었다.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은 1.5인분은 거뜬히 먹을 정도로 대식가가 될 때도 있어서 남편에게 마구 자랑할 때도 있었다.


퇴원하고 나서는 산부인과에 가는 날에 맞추어 내과에 들려 간수치 피검사도 하고, 산부인과 정기 검진도

함께 진행하고는 했다.

약을 자주 복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간수치는 내려가주었고, 혹시 모르니 한 달에 한 번씩은 계속 검사를 진행하자고 해 주셨다.


진통이 오고 나면 한 없이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너무 겪해져서 집을 나가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너무 속상해서 유정이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고, 유정이는 바로 차를 끌고, 우리집으로 와주었다.

와서 나의 하소연도 들어주고, 같이 화도 내주고, 남편 입장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같이 맛있는 저녁도 먹어주었다.


유정이 남친은 남편과 함께 한 잔 하면서 남편의 힘든 점을 많이 들어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도 해 주었다고 한다. 유정이 커플에게 항상 고마운 점이 많은데 가장 고마운 점은 우리 부부에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배분 해 준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해 준다는 점이 매우 고맙다.

임신 전 타로마스터를 취득했는데 유정이는 타로 보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유정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생겨 기뻤고, 유정이는 언제나 내가 힘들거나 속상해 하면 바로 달려와주었다. 그 때마다 나는 유정이에게 타로를 봐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어갔다.

역시 스트레스를 풀면 진통이 왠지 덜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아기도 나도 남편의 따스한 손길이 좋아 자기 전 안마, 태담 등을 해주면 새벽 내내 깨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진통이 자주 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나 속상한 기분이 드는 날은 조기 출산하는 꿈을 자주 꾸고는 했다. 나로 인해 아기가 잘 못 되는 꿈을.. 아기가 여행을 떠나버리는 꿈을..


20주부터는 일주일에 3-4번 응급실을 올 정도로 진통의 세기와 주기가 점점 짧아져만 갔다.

과장님은 입원을 계속 하여 권유하셨지만 정말 힘들 때, 피가 많이 비칠 때 말고는 집에서 버티거나 응급실에만 방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이기적이지만 그 때는 병원에 있으면서 내가 더 우울해지면 아기가 영영 잘 못 될 것만 같은 생각뿐이었다. 매우 위험한 행동을 한 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마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왜 입원기간을 더 오래 하지 않는지, 진통이 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입원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 거 같다. 폐쇄공포증(심하지 않음. 간혹 불안하면 과호흡과 함께 발병 됨) 나로서는 창살에 막힌 산부인과 병실에 들어와 있는 것 자체로도 너무 힘들었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기 힘들어 할 때도 있는데 병실에 있는 것은 그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새벽에 극심한 진통과 피비침이 너무 많아 응급실을 간 적이 있었다. 과장님께 혼난 적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프도록 참고만 있었냐고, 이러다가 양막 파열되면 정말 큰일난다고.. 아기 10달 품고 싶지 않냐고 말이다. 이 때는 바로 입원을 하고, 울 자격도 없으면서 펑펑 울기만 했었다.


‘병원에 있는게 싫어서 집에서 버틴건데, 그게 아기를 힘들게 하는 일인줄 몰랐는데, 나는 아기 지키려고 한건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거야. 나는 아기를 가질 자격도, 지킬 자격도, 낳을 자격도 없으면 왜 나에게 아기를 자꾸 보내시어 힘들게 하시는거야.’ 라는 원망의 말과 함께 말이다.


중기부터는 가까운 외출 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었고, 화장실에서 힘을 주는 것도 불안해하며 쉽게 가지 못 했다. 배가 나올 수록 소화는 더디게 되어 먹는 양이 더 줄어만 가는데 입덧까지 계속 되니 몸무게는 계속 해서 빠져갔지만 감사하게도 아기는 정상속도에 맞춰 크고 있었다.


병원 정기 검진은 최소 1주에 한 번, 2주에 한 번 이상은 갔었고, 응급실 간 횟수까지 합치면 정말 문턱이 닳도록 방문 했었던 것 같다. 매번 몸상태를 걱정 해 주시는 과장님, 갈 때마다 어땠냐고 먼저 물어봐주시는 담당 간호사 선생님 정말 좋은 분들 덕에 임신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막달이 될 수록 끝날 것만 같던 나의 입원 생활은 끝이 나지 않았고, 입원하면 최소 3박 4일 길게는 2주까지 기나긴 입원 생활은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게 되면서 시작 되었다.



조기진통은 대부분 20주부터 온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13주부터 시작되었고,. 입원 시 조기진통 코드가 들어가 있으면 소득 기준에 따라 보건소 고위험 산모 진료비를 일정 금액 지원받을 수 있다.


단, 조기진통은 20주 이후부터 해당되기에 나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다행히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2인실을 혼자서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병원 덕분에 한 번도 출산한 산모와 같이 입원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 같이 입원했다면 나는 버티지 못 하고, 매일을 눈물로, 화로 입원 생활을 했을 것만 같다.


다음 화는 만삭 때 갑작스레 대학병원 산부인과로 전원하게 된 이유와 전원한 이후 나의 생활에 대해 적어보게 될 것 같다. 임신한 모든 분들, 임신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 육아를 하는 모든 분들의 평온한 하루를 기원하면서 5화를 마칩니다.


에필로그 : 나는 유정이 덕에 태교 여행이자 만삭 여행을 25주 6일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 때는 8월초로 매우 더웠고, 아기와 함께 하는 태교 여행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서프라이즈로 베이비샤워도 해 주어서 여행 내내 눈물과 빨개진 얼굴 사진 밖에 없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표현을 많이 해 주는 게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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