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처럼 소중한 아이가 찾아왔다.
산부인과 진료에서는 아직 초음파상으로 보이지 않으니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피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셨고, 결과는 4시간 후 문자나 전화로 갈 거라고 하셨다. 우리는 피검사를 하기로 결정하였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데이트를 즐기기로 하였다. 갑자기 가고 싶던 연애시절 우리의 텐동집으로 가서 마치 처음부터 입덧은 없었던 사람처럼 한 그릇을 싹 비운 후 꽃집에 들러 태몽에 나왔던 노란 장미 한 다발을 사고, 이것도 기념이라며 임신테스트기를 들어 네컷 사진도 찍고, 서점에 들려 임신출산육아 대백과 책도 사보았다. 4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연락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병원에 전화해보려고 했지만 남편은 연락 올 거라고 조금만 기다려보자라고 하였고, 집으로 가는 차 안 마침 문자가 딱 오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임신확인 호르몬 혈액검사 결과 수치 830.43으로 임신입니다. 3/15 이후로 내원하셔서 초음파 확인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다시 울음이 터졌고, 집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문자만 들여다보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4-5주 정도에는 아기집이 보인다는데 나는 왜 안 보이지? 또 이별이 먼저 온 거야?’라는 생각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초음파 보기 전까지 아침마다 두 줄을 확인해야만 그날 하루가 편히 지나갈 수 있었고, 점점 심해지는 입덧과 기분 나쁜 배통증, 피 비침으로 집에서는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 마음이 편했던 곳 그곳은 바로 집이 아닌 학원이었다. 이상하게 학원에만 가면 긴장감 때문인지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았지. 매일 버스와 친정 아빠 차로 출근하는게 힘들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마음의 안식처였던 것 같다.
드디어 병원에서 알려준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는 날짜가 되었고, 이 날은 분주하게 아침부터 설레하면서 화장에 유난히 공을 들였는데, 아기와 처음 만나는 모습이기에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음파 확인만 하는 것이기에 집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고, 초음파에 비친 강낭콩처럼 작은 아기집이 보이자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 감사해서, 너무 예쁘게 자리 잡아주어서, 기특해서 눈물이 나왔다. 원장님은 아기집은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은데 계속해서 피 비침이 있다고 하니 양은 얼마 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하셨다.
절박유산이 있으니 질정을 처방해 주시겠다고 하며 오래 서있는 건 절대 안 되고, 누워만 있으라고 하셨지만 출근한 지 2주밖에 안 된 나는 머릿속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어지러웠다. 아직 학원에는 임신에 대해 말씀을 안 드린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나름 보육과 출신인 것을 티 내본다고, 아기 발달 과정과 요즘 엄마들 교육법에 대해 어린이집 교사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태교도 해 본다고 쉬었던 제빵도 해 보고, 유튜브, 블로그 등 아이를 키우는 법, 대화법 등 아직 먼 미래에 관심을 두며 이미 아기 엄마인 것처럼 행동했었다. 맘카페와 뇌종양 카페에서 활발히 글을 올려 임신부인 엄마들이나 이미 육아를 하시는 엄마들과 소통하며 응급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미리 방지하고자 했었다.
아기집을 확인한 뒤 보건소에 가서 임신부 배지와 엽산, 철분제를 받았을 때의 그 기억, 감정, 순간적인 모든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피부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과 가족, 지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 면서 크나큰 축복과 축하를 받았지만 나의 건강 상태를 아는 사람은 축하보다는 걱정 어린 말을 많이 해 주었다. 그 또한 나와 아기를 생각하는 마음이겠거니 하며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임신 기간 동안은 축복과 축하만 받기에도 벅찬 소중한 기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스레 걱정 어린 말을 들었을 때는 가시 돋친 반응을 종종 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도 아는 말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무서워서 더 그랬었다.
학원에 출근하여 임신부 배지를 보여 드리며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고, 원장님께서는 힘드시면 꼭 말씀해 주세요 라며 축하의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같이 일하는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아이를 힘들게 일찍 낳게 되었다고 선생님은 꼭 건강히 열 달을 채워서 낳으라고 말씀해 주시며, 오래 서있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 주셨다.
학원 아이들은 선생님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거냐며 복도를 걸어가거나 수업할 때 넘어지지 않게 에스코트해 주고, 큰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도록 조심조심해 주었다. 이렇기에 학원에만 오면 나는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온 날은 입덧으로 조금 힘들기도 했었다. 그마저 냄새를 빼고 들어와 주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처음으로 태명을 각인하여 초음파 앨범도 주문해서 초음파 사진을 붙이고, 처음 두 줄을 확인했을 때의 감정을 편지로 남기며 이번에는 우리 아기 심장소리도 듣고, 성장하는 걸 꼭 볼 수 있을 거야라고 반복하듯이 말을 되뇌었다. 일주일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 우렁찬 심장 소리도 들려주고, 예쁜 모양의 아기집도 보여주었다. 다만 출혈이 계속해서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같이 들었다. 아기 첫 심장 소리를 나 혼자 듣게 되어서 아쉬웠지만 남편은 어플을 통해서라도 아기 첫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고 한다.
그 작은 심장으로 우렁차게 뛰는 걸 보며 ‘나 여기 있어요 엄마, 아빠. 나 건강하게 있어요.’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잠이 안 오거나 심심할 때 매번 다시 보고 ‘내 뱃속에는 귀한 선물이 들어있으니 엄마로서 건강하게 아기와 나 자신을 지키자.’라고 다짐을 했었다.
친정 엄마는 나의 임신 소식과 함께 본인의 스케줄을 다 취소하고, 오롯이 나와 아기만을 위해 애써주셨다.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친정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우울해하면 외식을 나가거나 산책이라도 나가자고 기분 전환을 시켜주셨고, 피 비침으로 인해 불안해하면 아기가 건강히 자리 잡으면서 피가 비칠 수 있는 거라고 잠시 쉬어보자고 괜찮을 거라고 많이 다독여주셨다.
아마 친정 엄마와 남편, 유정이가 아니었다면 임신 중 우울증에 빠져 혼자만의 동굴로 빠져들어가고만 있었을 거 같다. 임신 기간 중 고마운 사람이 많지만 이 세 사람에게, 그리고 우리 집 호박, 감자, 토리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한다. 나의 곁에 머물러줘서 힘을 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다음화에서는 절박유산으로 인해 질정뿐 아니라 호르몬 주사 처방과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게 되는 내용을 적게 될 것 같다. 무겁고, 지루할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나와 아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 임신부 배지는 출산 후인 현재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다만, 초음파 앨범은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작고, 소중한 아기는 우리 집 냥이들과 어우러져 지내고 있으며, 엄마를 닮아 노는 것을 좋아하고, 아빠를 닮아 물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