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녹아내리게 하는 그 말 너무 싫어요 (1)

그만 듣고 싶던 그 말… 결국 다시 듣게 되었다.

누워만 있으라고 하는 말을 듣지 않았던 탓인지 경고처럼 핏덩어리가 나오고 말았다. 다음날 마침 주말이라 앞 뒤 안 보고, 생각해 두었던 큰 여성병원으로 당일 접수를 하러 가는데 코로나가 심할 때라 보호자는 출입금지였다. 마음속으로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초진 접수를 하고, 원래 진료보고 싶었던 여자 과장님은 이미 스케줄이 풀이여서 생각지도 않았던 남자 과장님께 첫 진료를 보게 되었다. 남자 과장님께서 초음파를 보시더니 절박유산이 맞다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고, 나는 현재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어서 오래 서 있는다고 말씀드렸다. 현재 상황은 절박유산인 것 같으니 아이를 지키고 싶으면 쉬는 게 맞다고 하셨다. 다행히 아기는 조금 더 자란 모습으로 우렁차게 심장 소리를 들려주어서 조금이나마 안심을 하고 올 수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우렁찬 심장 소리에 기쁜 나머지 주차장에 있는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아기는 심장도 우청하게 뛰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었다. 큰 병원이라서 그런지 초음파 사진 화질도 더 좋아 보였고, 아기 모양도 더 뚜렷하고, 예뻐 보여 초음파 앨범에 부착한 뒤 스티커와 손글씨로 나름 정성스레 꾸며주었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아 다들 자고 난 뒤 절박유산에 대해 유튜브, 블로그, 카페 등 검색할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봤던 것 같다. 좋은 예후도 있었지만 나처럼 핏덩어리가 나오는 경우는 나쁜 예후가 더 많았다. 괜히 검색해 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가 나올 때마다 불안해서 유산 증상, 피의 양처럼 모든 증상을 하나하나 다 검색해 보았었다. 긍정의 결과를 볼 때는 ‘나도 누워있기를 잘하면 저렇게 예쁘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정의 결과를 볼 때는 ‘유산되면 어쩌지.. 이미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또 이별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정 변화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다 지켜본 남편과 친정 엄마 또한 불안했을 것이다. 갑자기 웃다가 화내고, 슬퍼하다가 씩씩한 척했으니 걱정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괜찮다고 말을 해 준다 한들 나 자신이 불안하면 괜찮다는 말조차 화가 나는 법인데 ‘이 상황을 안 겪어봤으면서 나보다 힘든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야’ 하면서 말이다.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그만 검색하라고, 그 시간에 좋아하는 가수 노래나 듣고, 좋아하는 만화나 영화 좀 보라고 등을 한 대 세게 때려줘 버릴 거 같다. 너무 많은 정보는 나를 더 불안에 떨게 했고, 심리적으로 힘들게 했고, 임신 축하 인사에 행복함을 표현하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전종관 교수님의 유퀴즈 출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임신부에게 안정을 취하라는 말은 좋지 않다고 하시던데 왜 내 담당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들 안정을 취하라고만 하지 라면서 안정을 취하지 않아도 나도 아기도 건강할 거야 우린 10달 뒤에 무사히 만나게 될 거야. 의사 선생님을 잘 못 진찰하신 걸 거야 라며 모든 탓을 전가하며 스스로 괜찮다고 불안함을 잠재우려고 하고 있었다.




병원을 다녀온 지 3일 후 나의 일 욕심 때문이었을까.. 이번엔 생리처럼 피가 주르륵 흐르고 말았다. 학원에는 양해를 구하고,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반차를 쓰고, 함께 병원에 방문하였다. 역시나 코로나로 인해 산모만 병원 출입이 가능했고, 담당 과장님의 휴진으로 여자 과장님께 진료를 받게 되었는데 혼자 듣기에 너무 무서운 말에 또 한 번 무너지고 말았다.

여자 과장님께서는 ‘출혈도 계속 있는 상황에 아기집이 저번 진료보다 크지 않았고, 모양이 예쁘지 않으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네요.’ 가시가 있는 듯 너무 뾰족한 그 단호한 말에 나는 다시 한번만 봐달라고 제발 아기를 지켜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 과장님은 현재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으니 아기를 지키고 싶으면 최대한 안정을 취하라는 말 뿐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닐 거야 라며 마음을 다잡고, 남편에게 가서 앞에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남편은 담당 과장님이 아니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담당 과장님 계실 때 다시 오자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는 건강한 아기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안심이 되는 말들만 해 주었다.


며칠 뒤 담당 남자 과장님 진료 날짜에 맞추어 한 번 더 방문을 했고, 저번 진료 때 들었던 내용을 말씀드리자 계속되는 출혈은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질정과 호르몬 주사 처방을 맞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호르몬 주사에 대해 여쭤보니 배에 주사를 맞는 거라고 하시면서 이 주사는 유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도구일 뿐, 무조건 누워있기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다. 배에 주사를 맞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처음으로 팔과 엉덩이가 아닌 곳에 주사를 맞는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지만 아기를 지킬 수만 있다면 못 할 게 없었다. 지킬 수만 있다면 열 달을 온전히 품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주사라도 어느 부위에라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그래. 나는 엄마야. 아가야 엄마는 무섭지 않아. 엄마에게 힘을 주렴’ 하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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