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듣고 싶던 그 말… 결국 다시 듣게 되었다.
배에 맞는 주사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지만 나는 피부가 약해서 그런지 멍이 들었고, 새삼 아기를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끼며, 아기를 품고 있는 모든 임신부들이 대단해 보였다. 주사를 맞고 온 뒤 밤에 처방을 받은 질정을 넣어도 출혈은 지속되어 갔다.
간혹 생리처럼 나오는 출혈은 응급실에 가서 초음파를 확인하고 와야지만 밤에 잠들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아기는 느리지만 천천히, 약하지만 강하게 버텨주고 있었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이 주신 아이가 맞다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서라도 우리 곁에 와줄 거라고,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니 제발 지켜달라고 하루의 마무리는 그분에 대한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병원은 1주일에 한 번씩 내원했었고, 질정과 호르몬 주사는 피의 양이 많아질 때마다 추가 처방되어만 갔다.
하루의 마무리는 질정 넣기가 되어버렸고, 혹시나 깜빡하고 잠든 날은 새벽에라도 꼭 넣어야지만 안심이 되고는 했었다.
원래도 감정기복이 심했던 나는 임신 후 호르몬 변화로 한 없이 우울할 때는 밑으로 파고 들어갔고,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하루하루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계속되는 피 비침에 매일을 우울하게 보내면 아기도 우울할 것 같아서 행복한 기분을 만들려고 남편이 노력을 많이 해 주었다. 새벽에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맛집을 검색해서 배달을 시켜주거나 포장해 오거나 갖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는 웬만하면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하루에 슬픈 일과 행복한 일이 공존해서 너무 우울하지만은 않게 보낸 거 같았다.
영어 학원에서도 몸상태에 따라 배려를 많이 해 주셔서 수업 중간중간 앉아 있고, 쉬는 시간에는 빈 강의실에서 마스크 벗고, 쉴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아이들은 종종 아기에게 꼭 전해달라며 달달한 과자나 음료수를 선물해 주어서 너무 고맙고, 힘이 났었다. 학원에서 보내는 4시간은 하루 중 가장 힘이 나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출산 예정일을 받게 되었는데 예정일은 11월 13일이라고 한다. 남편과 생일이 2일 차이라서 같은 날 태어나도 너무 재미있겠다는 말을 했었다. 나도 친정아빠와 생일이 2일 차이기 때문에 우리 아기도 아빠와 생일이 비슷하다면 너무 좋은 기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다. 이 때는 당연히 예정일에 맞추어 아기가 태어나는 줄로만 알았다.
언제나 환절기에 항상 감기를 달고 살았기 때문인지 역시나 감기가 찾아왔고, 미열이 있어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했지만 다행히 음성으로 가벼운 목감기였다. 임신 기간 중에는 미열이 있다고 하지만 코로나가 심하던 시기라서 그 마저도 걱정되어 자가키트는 열이 조금만 나면 계속 사용하느라 보건소에서 임신부 대상으로 나눠준 자가키트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감기를 이겨내기 위해 마시지도 않던 따뜻한 물과 차를 찾아 마시며 건강하게 이겨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감기약도 먹기 싫어서 잘 안 먹었던 나는 시간을 맞춰놓고 엽산과 영양제를 챙겨 먹을 정도로 철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도 솔직히 먹기 싫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약은 정말.. 만든 사람이 너무 싫다.
아버님께서 일이 있으셔서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하룻밤 주무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심각할 정도의 핏덩어리와 피가 나와 남편과 급하게 응급실로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현재 주수가 너무 어리기에 지켜볼 수밖에 없고, 초음파 상으로 아기는 심장이 잘 뛰고 있으니 괜찮기를 바라자고만 하셨다. 밖에서 대기하던 남편을 보는 순간 ‘우리 아기 괜찮데’라고 말이 나왔다. 나도 남편도 그저 아기가 심장이 건강하게 뛰길 바랄 뿐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허기가 지면서 좋아하지 않던 회와 매운탕이 먹고 싶었다. 원래 생선을 좋아하지 않고, 매운탕은 냄새도 안 맡고, 먹지 않던 음식이다.
임신 초기에는 날 것은 감염의 위험이 있어 먹으면 안 좋다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인터넷(카페, 블로그)상에서 많이 보았었다. 아버님은 신선한 것 먹으면 되니 먹고 싶은 거 먹는 것이 아기한테도 좋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너무 먹고 싶어 하던 회와 매운탕을 사주셨다. 내 인생 최고로 맛있었던 회와 매운탕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안함에 더 잠을 깊이 못 잤던 거 같은데 물론 고양이들도 한 몫했다. 고양이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밤에 뛰어다니고, 식사하고, 사냥놀이를 한다. 청각이 더 예민 해 지니 그런 크고 작은 소리에 더 반응했던 거 같다.
잠을 깊게 못 자니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져 갔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고양이들에게 화를 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고양이들은 아는 듯이 우리가 미안해라는 눈빛을 보내며 나를 핥아주고, 골골송을 불러주고, 누그러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다.
밤에 잠이 안 올 때에는 거실에 나와 호박, 감자, 토리와 교감하고, 그들과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하면서 골골송을 듣는 게 우리만의 놀이였다. 골골 송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그 소리를 들으면 괜스레 뱃속 아기도 편안하게 잘 자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여행 다니는 것도 것도 전시회 보러 다니는 것조차 당연히 하던 평범한 일상들이었는데 축복이 찾아온 이후로 1시간 이상 차를 타거나 30분 이상 서있거나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배가 뭉치면서 피가 비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출근할 때는 친정 아빠가 시간이 되면 대부분 데려다주셨고, 퇴근길은 언제나 남편이 야근을 하더라도 중간에 집에 데려다준 후 다시 회사로 출근했었다. 혹여나 버스를 탈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서야만 했다. 여러 냄새와 덜컹거리는 의자 때문인데 특히 퇴근 후 버스 안은 여러 간식 냄새로 상당히 힘들어하는 내가 걱정됐는지 친정아빠와 남편이 출퇴근을 도와주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그 덕에 4개월을 꾸역꾸역 버틴 거 같다. 항상 고마운 사람은 가까이에 있고, 가깝기 때문에 더 살갑게 표현을 못 하는 거 같다. 곁에 있을 때 감사한 표현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위드 코로나로 변하면서 평일에는 보호자와 함께 내원할 수 있게끔 병원 지침이 바뀌었고, 나중에는 주말에도 함께 내원할 수 있게 되었다. 평일에 남편이 시간이 안 될 때에는 친정 엄마, 아빠와 함께 병원을 내원하고는 했는데 엄마와 함께 진료 초음파를 같이 볼 때 느낌이 너무 이상했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나의 엄마와 함께 보니 더욱 새로운 기분이었다.
아기는 점점 머리와 몸통, 다리로 자라면서 꼭 인사하듯 양손을 흔들 때도, 춤추듯 수영할 때도, 신난 듯이 헤엄칠 때도 있었다. 과장님은 ‘엄마가 보러 와서 기쁜가 보네~ 활동량이 많은 아이가 태어나겠어.’라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건강하게 손가락, 발가락, 모든 장기 가지고 태어나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요.’라고 대답했었다.
아기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감동받고, 행동 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우렁찬 심장 소리에 감동받기 일 수였다.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는 한 달에 한 번씩 온라인 태교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열심히 재료는 다 받아놓고, 막상 제대로 만들었던 것이 없다. 나중에 아기가 크면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엄마가 미리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우리 함께 만들어 보자고 하면서 말이다.
임신 초기부터 36주까지 하혈이 계속 나와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임신 기간을 보냈었다. 산부인과 진료를 볼 때면 항상 하혈이 얼마나 있었는지 체크하고, 질 초음파로 경부 길이와 출혈 여부를 확인하며 안도감을 얻었고 초음파를 볼 때 나마 조금씩 자라나는
아기를 볼 때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다음화에서는 입덧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 적게 될 것 같다. 입덧은 임신 사실을 확인 전부터 겪게 되었으며, 출산 전까지 입덧 지옥에서 살게 해 주었었다.
에필로그 : 병원에서 아기와 함께 퇴원하고 오던 길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작아 바구니 카시트 속 안으로 파묻히듯 들어간 우리 아기.. 혹여 오는 차 안에서 깰까 노심초사하며 속도도 30-50으로 천천히 달려왔었는데 지금은 아기 혼자 붕붕카에 앉아 있을 정도로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