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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데 Sep 23. 2024

영끌족의 최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 다시 돌아갈래...!"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한 영화의 주인공의 절절했던 대사... 누구에게나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시점이 있을게다. 나에게는 바로바로 2006년 11월 경인데, 그때 내가 졸지에 영끌족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으니...


최근에 있었던 불장 못지않게 부동산이 치솟고 특히 판교 개발로 인근 지역 분당의 집값이 말이 안 되게 뜨겁게 오르던 시점이었는데, 일주일여간 출장을 간 홍콩에서 받은 급작스런 남편의 전화. 나 없는 사이에 갑작스레 시아버님과 합작으로 아파트를 계약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무렵 애를 낳고 출산휴가로 쉬던 기간에 아시아 헤드쿼터에 큰 행사가 있어서 2개월짜리 출산휴가를 다 못 마치고, 출산 후 50여 일 된 몸을 끌고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삼십 대 초반으로 각각 외국계, 한국계 대기업 대리급이었고, 전세 2년을 마치고,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봐주시는 시댁으로 합가를 해 들어간 상태였다.


분당으로 이사 오기 전까진, 직장 근처에 전세를 살며 친정이 있는 반포를 보고 있었는데, 시댁에서는 분당에 집을 사기를 원하셨고,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에 마음이 급해진 남편과 시아버님이 내가 없는 사이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집을 전세를 끼고 최고가 매수를 하셨다.


그때 우리 수중에 있던 돈이 전세를 뺀 집값의 25%, 매도한 분이 계속 살기로 한 전세가 30%, 은행 대출이 45% 정도였는데, 출장을 다녀온 후 매매한 집 가격을 보고 1차 충격, 대출받은 금액을 보고 2차 충격, 월이자를 보고 3차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남편!… 대..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아아아아……..


나는 그전까지 서울 강남 구축에서만 살아와서 서울이 아닌 분당 집값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는데, 그때가 아마도 분당의 리즈시절이었던 듯하다. 강남과 큰 차이가 없었던 시절에서 지금 벌어진 갭이란…


시부모님이 사회생활을 하는 나 대신 내 금쪽같은 아이를 봐주고 계시니, 부모님께는 쥐 죽은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주로 만만한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며 지내던 와중에 2008년 금융 위기가 다가오고, 40% 대출을 받은 만큼 아파트 가격이 폭락하던 시점도 오더라 ㅎㅎㅎ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큰 결정을 혼자 한 남편에게 화가 나 이혼해야 할지 말지 고민도 정말 많이 했다.


어느 순간 내 인생의 작은 부분이어야 할 돈 문제가 너무 큰 문제로 다가오며 가정문제, 인생문제로 끝이 있을까 싶은 터널을 몇 년을 지나가야 했었다.


시간이 흘러서 전세가가 오르며 대출받은 금액을 전세로 돌리고 은행 이자도 점점 줄어들었지만, 부동산으로 큰 손실을 본 우리 부부는 안정적이어야 할 금융 투자에 무리수와 실수를 반복했다.


어차피 큰 투자가 이렇게 된 것 막 해보자는 뜻에서 은행에서 권유하던 중국 펀드, 일본 부동산 펀드 등을 자세히 내용도 보지 않고 투자하며 회사를 다니며 맞벌이 월급을 받아도 뒤로는 마이너스가 나는 생활을 오래 하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니, 경제흐름이라는 게 큰 글로벌 흐름이 있어서, 그걸 잘 타고 움직이는 게 필요한데 그때는 그런 감이 없는데 투자판 안에 들어있었던 게 큰 문제였던 것 같다.


2006년에 매매한 집을 몇 해 후에 해외로 나와서 살 게 될 때까지 처분도 못하고 마이너스인 상태로 가지고 가다가, 이제 어느덧 까맣게 잊고 내 기억 속엔 없어진 집이 될 지경인 2017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올라가는 조짐을 보였다.


한창 예쁠 아이를 키우며 부부끼리 깨도 볶고 살아야 할 중요한 시기에 +/-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한 무리한 부동산 투자의 실수를 해서, 우리 부부의 30대는 항상 투닥거리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안주할 선택권이 없는 노빠꾸 인생을 살다 보니, 직장일에 올인하여, 나름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성과를 이루었고…


시간은 흘러 흘러 매매 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그 집은 아직도 보유 중으로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보니, 죽일 만큼 미웠던 그때의 남편이랑 이혼은 안 함으로 더 큰 불행으로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 돈으로 크게 고생을 해서, 투자나 부동산에 대해 조심성이 많이 높아졌고,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면 함부로 손을 대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재밌는 사실은 그때 우리에게 그 집을 매매하신 분은 우리가 해외로 나오면서 들어갈 수 없는 집이 되다 보니, 주변 시세보다도 너무나 싼 가격으로 십수 년째 그 집에서 거주하는 복을 누리고 계시다.


사실 처음에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너무 과하게 불타 오르는 강남지역 부동산을 보다 보니 거부감으로, 그리고 1 가구 1 주택 세금 납부자로서 집 값이 오르는 게 전혀 반갑지도 않은 현실을 나누고, 내 실패 사례를 나눠서 너무 무리한 부동산 투자를 좀 막았으면 하는 뜻에서 부족한 글 솜씨지만 여기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끄적이게 되었다.


영끌족의 최후는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데, 우리가 그나마 잘했던 것은 부동산의 실수로 더 큰 것, 가족 관계라던가 부모님과의 관계,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상 마이너스의 손으로 경제적으론 큰돈을 손해 봤지만 인생사 배운 점도 많았던 영끌이의 부동산 관련 시리즈 글을 마쳐봅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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