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연이는 결혼 안 할 거야.

왜 나는 결혼을 포기하려고 했나.

by 김종연

농담에는 그 당사자도 알지 못하는(혹은 외면하고 있는) 인식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장난 삼아 "너희 나 빼놓고 ~하는 거 아니지?"라고 종종 묻는 사람의 이면에는 소외감이 있다. 어쩌면 자신이 빠져도 문제없이 돌아갈지 모를 관계에 대한 불안을 '농담'에 숨어 표출하는 것이다.



보통 웃고 넘길 농담에, 나는 종종 혼자 웃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발화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게 때문에, 얼굴로는 구색을 맞추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농담 발화자'의 진심이 주는 불편함을 곱씹고 있었다. 농담 이면의 인식은 당사자도 알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관련해서 대화를 시도하거나 질문을 한다면 서로 무안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하여, 나는 홀로 이 불편함을 소화해내야 했다.



형, 형수와 저녁을 함께하다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형은 30대에 들어선 오늘까지 장난기를 잃지 않은 천진난만한 인물이다. 그의 결혼 생활에서도 이런 면모를 자주 볼 수 있는데, 형수에게 장난을 걸고, 형수가 반격하는 그림이 일반적이다. 그 반격은 다시 장난의 재료가 되며 이 양상은 계속 반복된다. 그날 저녁 자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보며, 결혼을 해도 관계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하고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형수가 형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이러는 거 자꾸 보니까, 종연이가 결혼 안 하려는 거 아냐!"



나는 내심 놀랐다. 형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 적 없는데, 그녀의 의식 이면에 그런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니. 농담으로 한 이야기지만, 그 저녁 내내 이야기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위 사람들은 내가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왜 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 주었을까.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사람에게 크게 데었다거나 하는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판단의 유보였다. 나는 대상에 대한 내 마음이 복잡하게 섞일 때, 판단을 유보하곤 했다. '요즘엔 너무 바빠서요.'와 같은 대답을 안겨서 질문을 떠나보내는 일이 잦았다. 더 묻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어쩌면 불편한 나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어 편했을지도 모른다.



판단의 유보는 위기를 모면하는 쉬운 방법이다.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이 자세를 취한 나 같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입장을 결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판단을 유보한 시간이 길어지면 선택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그 기간 동안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천 가지도 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형수의 이야기에 결혼이 왜 멀게 느껴지는지 살펴보려고 했을 때의 내가 그랬다. 마무리하지 않은 학업, 불투명한 미래, 가장의 책임감에 대한 상상 등 선택 못할 이유가 과도하게 쌓여 있었다. 그런 이유들이 암세포처럼 검게 엉겨 붙어 있으니 메스를 들어 피부를 갈라도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힘을 내어 칼질을 거듭할수록 떼어져 나오는 조직들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3일 밤을 새우고도 남을 테니, 한 가지만 꺼내어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사회에서 지내면서 상처에 둔감해지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나는 상처를 받지 않는 쪽을 택했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상대에게서 기대받을 기회를 박탈하고는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 혹은 저런 사람이다.‘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기대가 없으니 더 정중해질 수 있었지만, 유대가 없어서 타인에게 실수하지 않아야 했다. 서로 조심해서 만들어진 원만한 관계에서도 자연스럽게 거리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벌어진 공간에는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에 오만한 생각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떠들어댄다.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 견뎌낼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함께 하겠다 이야기하는 사람조차도 직접 마주한 현실 앞에서는 나를 피해 도망갈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이 커질수록 사람에 대한 마음이 강해졌다. 서로 같은 감정을 느끼고, 마음 편히 감정에서 걷고 헤엄치는 사람들. 즉, 사랑 때문에 며칠 밤을 울고, 사람에 대한 기대로 잠을 설치기도 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걸 같이 느끼고 싶은 사람이 생겼으면 했다.



어느 밤에 이런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상처가 무서워도, 관계의 과정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을 거니까.” 라 이야기하던 친구를 보며, 과거의 나와 작별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이제 나도 조금은 기대하기로 했다. 진작에 시작하고 싶었지만, 나의 다짐을 뒤집는 것은 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져 한참 망설였나 보다.



아직도 상처는 두렵다.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도 어제의 나를 정리하는 과정이 시작되었음이 느껴진다.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없던 밤들의 당혹스러운 외로움도 상자에 담겨 먼지가 쌓일 날이 오기를 바라며, 첫 글을 마친다.





커버 사진 출처 - Daniel Jerez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왜 투명인간이 되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