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밤새워 이야기하던 꿈은 어디로 갔는가

부의 동의어가 되어가는 꿈에 대하여

by 김종연


요즘엔 주변에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없는 것 같아.




아직 온기가 남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친구가 말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폭포에서 쏟아져 내린 물이 되어 순간 밀려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꿈을 이야기할 때에는 살며 이루고자 하는 비전 혹은 사명,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자신의 흔적들을 대화에 실어 보내곤 했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꿈'이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이 변해온 속도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질병이 가져온 혼란한 시기를 지나면서 일생일대의 기회들이 생겼다. 가상화폐 투자로 수백억을 벌었다는 사람, 배달 시장에 빨리 진입해 억대 매출을 올리게 된 사람, 여러 수익 수단을 만들어 자면서도 돈을 번다는 사람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자 모두가 앞다투어 인생 역전을 노렸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사이트,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인사이트, 영감으로 포장된 창업, 재테크 강의 시장은 미약했던 과거를 잊고 창대함에 다가가고 있다.





인생 역전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커져갈수록, 꿈이라는 단어에도 명확한 흔적 한 가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명이자 지구에 남길 자신의 흔적이라는 뜻을 품고 있었던, 그 시절의 꿈이라는 단어에 부유함이라는 전제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돈을 벌어 누군가를 후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시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 혹자는 이런 삶의 양식을 통틀어 경제적 자유라고 부른다.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람이 달라져도 그들이 원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꿈꾸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전염병과 동행한 시간 동안 꿈이라는 단어는 좁아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깨달아졌다.


그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있지만, 그 꿈의 끝이 모두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신화를 가지고 있고, 그 신화를 살아내는 사람 앞에 신은 표지를 주면서 그 길을 따라가도록 돕는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신화'라는 단어를 우리가 쓰는 일상어로 바꾸면 '꿈'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코엘료가 모든 사람의 꿈의 목적지는 다르고, 인생은 그 길을 찾아 따라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느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모두가 부자가 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개성을 갖자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오늘날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신화를 찾아 살아내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이치에 맞지 않은가. 이러한 삶이 묻어나지 않은 개성은 소비로 누구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허울에 지나는 것 아닌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비롯한 안정적인 삶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사회에 깊이 젖어든 이 'love yourself'는 자본주의의 생산자들이 더 큰 이윤을 위해 이용한 또 하나의 상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자유하지 못하다. 나는 컴퓨터를 전공하는 사람이다. 2학년 1학기를 다니던 2019년의 내겐 학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검은 바탕에 빼곡히 적힌 흰색 코드를 마주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학교를 떠난 2년은 내게 뒤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랬을까, 군대에서는 나의 신화가 아니라 여겨져 치워 두었던, 가장 취업이 잘 되고 안전한 나의 전공을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피했던 것 같다는, 조금 더 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하며 다시 달렸다. 용기 내어 멈췄어야 했지만, 학교만 떠났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현실이 두려워 계속해서 블록을 쌓고 있었다.





'요즘엔 꿈꾸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제법 높게 쌓아 올린 블록은 이 한마디에 무너졌다. 나는 꿈을 꾸고 있지 않았다. 가장 쉽고 유리한 길로 도피하며 흘러가려 했다. 흘러 흘러 도착하고자 했던 곳은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자유'의 길이었다.


꿈이라고 믿은 블록 더미 위에 계속 블록을 쌓아보려 했지만, 하나를 쌓으면 다른 하나가 떨어지고, 또 그것을 올려놓으면 다른 것이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나는 조금씩 시들고 있었다.





친구가 보낸 폭포와 같았던 이야기는 불량하게 쌓여가던 내 블록 더미를 쓸어버렸다. 동시에 그 폭포는 내 사전 속 '꿈'이라는 단어가 ‘부’와 동의어가 되는 것을 피하라고 이야기했다.


또, 신이 예비한 길을 찾아 착실히 걸어가고 싶은 마음을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할 용기를 주었다. "용기야 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라던 코엘료의 글을 폭포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이건 타인을 비판하거나 가르치려고 적은 글이 아니다. 이 글은. 나 자신에게 강하게 당부하려는 글이다. 먹고 살 걱정할 시간에 나만의 신화를 발견하려 노력하라는 당부이다.


또, 아래에서 얘기하는 세 번째 연금술사가 되기 바라며, 꿈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 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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