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난, 조금 두려워져서.
자정을 한참 전에 넘긴 새벽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생각에 휩쓸려 잠에 들 수 없었다. 잠을 쟁취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자리에 앉아 졸음이 쏟아지길 기다리기로 했다. 꼭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내일은 반드시 올 테지만, 검은색으로 뒤덮인 하늘은 '정말 그럴까?' 하고 반문해왔다. 창 밖 파란 신호등이 켜져도 차나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정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비현실적인 적막을 깨며, 뱃고동 소리와 꼭 닮은 출동벨이 울렸다.
" 자살 관련 출동 지령입니다(......) **1구급차, **펌프차 출동하시기 바랍니다. "
이 시간에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는 귀향의 반가움과 안도감을 상징하던 옛 어촌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남편, 형제, 혹은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왔음을 알리는 소리는 반가웠을 것이다. 또, 어느 집 배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던 이들에게 가족의 귀환을 알리는 소리는 안도감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늦은 새벽 소방서에서 들리는 뱃고동은 누군가 떠나려 했음을 알려준다. 그게 살고 싶다는 절규의 다른 표현이든, 정말 죽으려던 사람의 소리 없는 부고이든, 반가움과 안도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소리를 들은 새벽이면, 본능적으로 등줄기부터 서늘한 기운이 올라온다.
그날, 녀석이 사는 지역의 소방서에서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을 거다. 자기는 나쁜 사람이라 같이 (슬픔에) 빠져줄 사람이 필요한데, 다들 자기를 구하려고만 한다고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손에 커터칼을 들었던 그 밤에, 녀석은 손목에 거즈와 붕대를 매고 구급차에 실려갔을 것이다. 현장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터라 절로 상상이 됐다. 가족들은 이럴 줄 꿈에도 몰랐다 구급대원에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겠다. 혹은 극도로 흥분한 나머지, 과호흡으로 같이 처치를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을 수도 있다.
어떤 장면이 펼쳐졌든 확실한 것이 있다.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된 내가, 아무것도 몰랐던 나보다는 더 아파하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몰랐다면, 녀석이 언제라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지금만큼 커졌을까 하는 의구심. 이 두 가지만은 확실하고 처절하게 실존한다.
그날이 지나고, '다음번 만날 때까지 살아있자.'라고 만남 말미마다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하도 자주 이야기하니까 친구 쪽에서 먼저 농담 삼아 이야기를 꺼내던 기억도 있다.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구가 웃는 날은 늘어 갔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매번 나누던 인사(다음번 만날 때까지 살아있자.)도 뜸해져 갔다. 이런 말이 필요에서 멀어진 것이었다. 녀석을 이렇게 만든 상황이 지나갔으니, 이제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점점 다음 만남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불안함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우울은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놈은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슬퍼했던 과거의 너에게 미안하지 않아? 그때, 너 엄청 억울했잖아. 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복해지면, 과거의 너는 혼자서 슬퍼하라는 거야? 배신이야. 널 배신하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며 거부하기 힘든 죄책감을 가지게 만든다. 죄책감은 관성을 만들고,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알고 있었지만 방심했다. 이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녀석이 일하면서 일어난 일, 가족과의 일을 전해 들으며, 안일했던 내 귀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려댔다. 네가 그 상황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까 두려워졌다. '살아남는다'는 단어가 절로 나오는, 잔악한 상황이 무심하게 너를 노려 볼 때마다.
그동안 우울한 사람을 곁에 두면, 너에게도 나쁜 영향력을 미칠 테니 되도록 멀리하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곧이곧대로 따를 생각은 없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울했던 나를 살렸던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않았기에, 그리고 같이 빠져들 각오로 끌어올려주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녀석을 구해야 한다. 함께 그놈과 맞서 싸워서 내일로 가고 싶다. 거기서 웃으며 오늘을 돌아보고 싶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끌어올렸듯이,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