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워킹과 하드 나태 사이를 무한으로 즐겨요
일주일의 김종연(명사)
: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면 그만두는 김종연(필자)을 가리키는 명사.
'쟤는 뭐에 빠지면 끝도 없이 빠져드는데, 그게 일주일 가.'라는 지인의 발언에서 유래함.
동사형은 '-하다'를 붙인 '일주일의 김종연하다'
용례로, '너 또 일주일의 김종연할거면 시작도 하지 말아!'가 있음.
어릴 때부터 흥미를 끄는 대상을 만나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 덕에 바둑, 태권도, 피아노, 과학상자처럼 그 시절 초등학생들이 했을 법한 것들은 거의 다 해봤다.
무슨 활동을 시작하든지 간에, 내 관심은 능숙하게 잘하는 법에만 쏠려 있었다. 잘하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 못하는데도 재미있다는 사람들은 잘할 수 없음을 그런 방식으로 위안한다는 오만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일을 정석대로 해내고 싶은 성향과 남들 위에 서고 싶은 허영심이 뒤섞여 만들어진 일그러진 감정이었다.
이런 감정들을 기반으로 취미를 대하다 보니까, 휴식과 재미를 기대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내 귀와 눈이 추구하는 방향은 저 위인데, 내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바닥에 있었으니까. 그 괴리가 느껴질수록, 자신에게 가혹해졌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빨리 는다.'는 이야기를 진리처럼 붙들고, 기본기 연습만 몇 시간씩 했다. 이를테면, 피아노를 할 때는 스케일 연습을 죽어라 하고, 그림을 그리면 선 긋기만 내내 하는 식이었다. 지루하고 괴로운 시기를 견디는 힘은 오로지 능력의 향상이었으니, 발전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눈에 보이는 발전을 얻은 일이 많았을까? 글쎄.) 그만두기 십상이었다. 내가 원하는 수준에 다다르려면 수년간의 연습이 필요한데, 의지로 그 기간을 버티려는 것은 스님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20년 남짓한 시간을 살아온 내가 이를 견뎌내고 원하던 것을 쟁취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 기간에는 퇴근 후 다시 출근을 하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일단 시작은 했으니 열심히 하는데, 쉽게 재미를 찾지는 못했다. 이런 취미가 일로 다가오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 나한테 일이구나.'를 인지하게 되면, 관심사와 빠르게 멀어졌다. 그렇게 손에서 멀어져 간 관심사들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자기 위안의 시간을 거쳐, 버려진 것들의 더미로 향했다.
지쳐서 취미를 그만두고 나면, 무기력함에 잠긴다. 점차 내 손으로 재미를 만드려고 하기보다는 남이 만든 재미에 동참하는, 수동적이고 소비적인 시기에 접어든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따위를 떠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대신 때워줄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다.
하드 워킹과 하드 나태의 사이클을 몇 차례 지나고 나면,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외국어나 패션, 영화와 같은 관심사가 생겨도, 그걸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행위의 끝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예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 남짓 푹 빠져서 가지고 놀다가 서랍 속에 처박히는 장난감처럼, 수북한 더미를 이루고 먼지가 쌓여가는 과거의 관심사. 이런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시작하는 마음을 가로막는다. 어차피 꾸준히 하지도 못할 거 그냥 시작을 하지 말자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결국 내 여가시간의 대부분은 유튜브, 넷플릭스로 채워진다. 꼴이 참 우습다.
나조차도 비웃는 내 모습을, 남이라고 비웃지 않을 리 없었다. 함께 생활하던 누군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쟤는 뭘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빠지는데, 그게 일주일 간다고.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시작하는 데에 대부분의 힘을 쏟고,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나머지의 힘을 쓰니, 롱런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의 김종연'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몇 가지 해봤지만, 그 단어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꼴만 보였다.
지금은 하드 나태의 극을 찍고 다시 올라오는 중이다. 해보고 싶은 것은 나날이 새로 생기지만, 시작이 두려운 건 아직 가시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보다 컸는지, 꾸준히 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의 결과로 한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규칙을 세우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3시간 동안 선만 긋기'처럼 질 수밖에 없는 규칙 안에서 패배하고 흥미를 잃는 과정을 반복했다. 의지가 나약해서라고 분석하고, 무기력한 나태의 늪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낳으면서. 그렇지만 이제는 '하루에 주식 한 종목 구경하기.'처럼 실패하기 어려운 미션을 내게 주려고 한다. 낮은 목표로 시작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 며칠간 실천해보니,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철봉에 가서 턱걸이 하나 하기.'라는 목표로 3일 연속 1시간씩 운동을 했다. 위의 예시로 주식도 일주일 동안 공부할 수 있었고, 책도 매일 읽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잔잔한 온도로 꾸준히 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뜨거워지지도, 더 차가워지지도 않은 딱 지금만큼의 온도로. 타인을 질투하지도 않고, 우월함을 느끼지도 않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면 좋겠다. 이처럼 소소하게 즐기는 일상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턱걸이 하나 하러 가야겠다.
커버 사진 - Jazmin Quayno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