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모옥은 어딘가 이상한 애플 워치 사용기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로맨스(?)를 곁들인...

by 김종연

이상하다. 누가 자꾸 손목을 쥐었다가 놓는다. 처음에는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한 강도였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누군가가 내 손목을 주무르고 있다. 누워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어디지. 아, 우리 집이구나. 혼자 사는 내 손목을 주무를 이가 있던가. 이상하다. 조심스레 눈을 뜬다. 손목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기분이 좋다. 알람을 듣고 일어났는데, 늦잠을 잔 것처럼 몸이 가볍다. 이를 닦으면서도 내내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알람을 불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을 추구하는 데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이런 태생적인 불쾌함 덕분에, 알람은 시끄러운 신호음을 설정해도, 아니면 감미로운 음악을 설정해도 짜증스러운 하루의 시작을 담당한다. 그렇지만 이 기계의 알람은 달랐다.




'이래도 안 일어날래?'라고 소리치는 신호음(이를테면 아이폰의 금속탐지기)을 들으며 일어나는 기분은 영 좋지 않다. 마치 평양냉면을 정신없이 먹다가 빠르게 사라진 냉면이 아쉬워서 이내 정신을 차리고 느린 속도로 음미하려는데, 종업원이 빨리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눈초리를 보낸다는 사실을 우연히 느끼게 된 상황 같다. 인생 마지막 평냉일지도 모르는데, 종업원이 주는 눈치 때문에 내 페이스와 상관없이 그릇을 비우고 일어나게 된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꽥 소리를 질러대는 알람을 마주한 아침의 기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주 달콤한 것을 빼앗아가는 상황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가 알람으로 울리면 상쾌한 아침을 얻을 수 있을까? 천만에, 알람을 처음 설정한 날이 그 노래를 가장 좋아했던 날이 될 것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 노래가 싫어질 테니까. 감미로운 노래로 눈을 뜬다는 발상까지는 좋으나, 세상 달콤한 잠을 감미롭게 빼앗기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면... 지옥이다.




하지만 손목에서 울리는 알람은 불쾌하지 않았다. 아주 여린 강도부터 시작해서,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일이 없게 한다. 마치 마사지하듯이 손목을 주무르는데,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일어나도록 한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일이 없으니, 비몽사몽 한 시간이 적고 상쾌하다. 몸이 상쾌하니,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청각보다 촉각적인 자극에 둔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비몽사몽 상태에 항상 패배하는 내게는 최고의 알람이다.




오직 알람을 위해,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잠들기 시작했다. 잠옷에 시계를 찬 모습이 조금 웃기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아침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알몸에라도 찰 수 있다. 수면 시간까지 내 손목을 점령한 애플 워치는 하루에 스물 하고도 세 시간 동안 나와 붙어 있었다. 첫 몇 주는 우리에게 참 행복한 날들이었다. 난 편리함과 상쾌한 하루를 얻었고, 애플 워치는 단숨에 가장 사랑받는 전자기기가 되었으니까.




진부하지만, 우리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발단은 유난히 길었던 한 주를 마치고, 주말 동안 세상과 끊어지겠다고 다짐한 금요일 저녁이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세상과 끊어진 사람의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려고 소파에 엎어져 있었다. 씻을 만큼의 기력이 채워질 때까지만 누워 있으려 했는데, 머잖아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속세를 잠시 벗어나겠다는 다짐 이전에 연락을 주고받은 친구의 메시지를 포함한 각종 알림들이 2분에 한 번 꼴로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움직이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바꿔 놓기 위해, '오늘 움직이기 목표를 달성하세요!'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기에 참지 못하고 풀어버렸다. 동반자의 잔소리보다 속세를 떠나고픈 마음이 압도적으로 컸다. 알람 따위, 주말이니까 늦잠을 자버리면 그만이다.




이 날부터였나, 집에 들어가면서 이것을 풀러 놓기 시작한 게. 무의식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았다. 손목에 얹힌 물체에게서, 전자기기 이상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이. 세상에서 잠시 로그아웃 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면, 손목에 알림이 울리면서 나는 그에 응답할 수밖에 없다. 23시간을 애플 워치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알람과 알림 모두 내가 시계를 구매한 이유였다. 사용하면서 날 가장 만족시킨 기능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람 때문에 하루 종일 착용하게 되었고, 알림 때문에 피로감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두 기능 때문에 급작스런 숨막힘이 생겨났다. 구매를 결정하도록 한 이유들이 숨막힘을 가져온 주범이라니,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원래 그런가 싶긴 하다. 연애를 시작하는 이유가 마무리하게 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애정과 증오는 맞닿아 있는 감정인가 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유효한 격언이 된 것일까. 아무튼, 정도의 차이이지 우리는 모두 애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양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극이 '애'에 가까운지 '증'에 가까운지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걸 깨닫고 혼란스러워한다. 애플 워치를 사용하면서 아주 만족한다고 생각했던 나처럼. (이제 '아주' 만족하는 것은 아니어도, 만족하고 있기는 하다. 너무 편해서...)




정이 들면 죽도록 밉다가도 안쓰럽고, 안쓰럽다가도 짜증 난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의 말씀이다. 부부가 원래 그렇다 카더라.) 자끔 부담스러워도 지금 내 시계가 좋다.



본방을 본 적은 없다. 파워레인저.



어릴 적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동경의 대상이었던 파워레인저들의 시계를 마침내 가진 것 같기 때문이다. 라면을 끓이다 시리에게 타이머를 맞추라고 지시하면, 뭔가 대단한 명령을 내린 것 같아 뿌듯해진다. 그 모습을 누가 보고 있다면 부끄러워 숨고 싶겠지만. 언제 다시 시계를 풀게 될지는 몰라도, 꽤 오래 함께하게 될 것 같다. 언박싱의 뜨거움은 가고 미지근한 일상만이 남아도, 애증의 사이클을 지나며 정이 들겠지.






P.S. 중간부터 읽은 독자들에게 알리자면,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애플 워치 사용기이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부탁한다. 안타까운 눈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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