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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Jan 22. 2022

EP3.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는 희망을 잃었다.

1.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잔혹성이나 잔악함을 빼놓고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전쟁 중에 기차를, 벽돌을, 군인들을 소모해 가면서 이렇게 할 것까지 있었을까.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어 가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무로 지어졌던 수용시설 터. 전쟁으로 나무 부분은 유실되었다.


        아우슈비츠는 세 개의 캠프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번째 캠프인 비르케나우부터 나무로 된 수용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수용소를 벽돌로 짓다가 벽돌이 부족해져 나무로 짓기 시작했다고 했다. 벽돌이 부족할 정도로 전쟁에 집중하는 중인데, 나무까지 끌어와서 수용소를 만들었다. 그만하고 멈췄으면 됐을 일이다. 전세가 기울고 그에 따라 물자가 부족해지면 유대인을 그만 잡아들였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세 번째 캠프까지 세워가며 사람들을 가두었고 가스로 질식시켰으며, 시신을 불태웠다. 잔혹함을 언급하기도 전에 마주한, 이 소모적인 학살의 현장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2.

        아우슈비츠가 학살장이 되어가면서, 나치 친위대는 시신 처리와 같은 일을 수감자들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이들을 특수직무반이라는 뜻의 '존더코만도'라고 불렀다. 유대인 수감자가 시체 처리, 살해 대상과 노동 대상을 분류하는 일, 수감자 감옥이었던 11블록에서의 일들을 처리하게 한 것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기차에서 내린 유대인들은 안도했을 것이다. 먼저 도착한 동족이 플랫폼에 서서, 누구는 이쪽, 누구는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면서. 차마 자신의 동족이 그 손끝으로 자신들을 사지로 내몰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사악한 발상은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이들 덕분에 유대인들의 저항이 줄었다고 했다.


저곳에서 내리면, 살해 대상과 노동 대상을 바로 선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존더코만도를 냉혈한으로 쉽게 치부할 수 있을까. 나치가 토스한 일을 했지만, 그들도 희생자고 피해자였다. 나치 친위대의 일을 도와준다면 조금이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질까 지원했겠지만, 그들은 주기적으로 처형되었다. 그들이 살아 있는 증거라서, 정기적으로 인멸할 필요가 있었다. 살면서 조금 나은 처우를 받았겠지만, 결말은 먼저 가스실로 걸어 들어간 동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결말은 다음 존더코만도의 시작이 되었다. 새로 뽑힌 그들은 선배 기수의 시신을 처리하면서, 자신들의 시한부 인생을 시작했다.


        아우슈비츠가 해방됐을 때 존더코만도는 14명만이 남았다고 한다. 평생 죄책감과 멸시를 짊어지면서 생존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 치고는 처참하다.




3.

        옷가방에는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아우슈비츠가 이주해서 살아야 하는 곳인  알고 기차에 올랐다.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나치가 짐을 걷어간다고 했을 것이다. 잠깐만  짐을 맡기고, 샤워를 마치고 나면, 머잖아 가방을 돌려받을  있을  알았다. 그래서 펜을 꺼내, 가방에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 따위를 적어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짐가방이 그 주인의 품이 아닌, 지금  눈앞에 있다. 처음부터 스스로 존재했던 것처럼  주인은 남겨두고, 홀로  앞에 있다. 유리로 가려져, 저렇게 쌓인 상태로.




4.

        수용소에 들어간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나오고 싶었다. 팬데믹 여파로 몇몇 장소는 들어가지 도 못했다. 정말 충격적인 것들은 보지도 못했는데(전해 듣기로는, 가보지 못한 장소들이 훨씬 더 열악하고 충격적인 모습이었다고 했다) 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젠 나치도, 죽음도 그 수용소에는 없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있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유대인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삶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으며 버텼다. 하루 한 컵 배급되는 물의 절반만 마셨다. 나머지 절반은 세수와 면도를 위해 썼다. 나치도, 죽음도 언제나 함께하는 그 수용소에서 희망을 가졌다.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 써뒀던 책을 출간하고자 했던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건물엔가, 수감자들의 사진이 끝없이 이어져있던 공간이 있었다. 줄무늬 옷을 입고 다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표정한 사람들 중,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미소는 잊히지 않았다. 뭐였을까, 그 상황에서도 그를 미소 짓게 했던 것은. 그도 빅터 프랭클의 책과 같은 삶의 의지가 있었을까.


폭파된 가스실 잔해에 누군가 꽂아둔 장미.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희망을 잃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죽고자 했던 이들을 마주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 나도 그들처럼 존엄을 지키며 죽을 각오를 다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 속 족제비처럼. 아름다운 자신의 털을 지키기 위해 오물 웅덩이 지나가기를 거부하고 사자에게 잡아먹히기를 기꺼이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수용소에서, 나는 30분 만에 마음을 소진했다. 이런 내가 사람의 모습을 잃어가는 동족들 사이에서, 난 얼마 동안이나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그전에, 그래야 하는 이유는 마음에 품고는 있나.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기준이 이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절대 잊지 않겠지만, 결코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 있는 동안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 마음을 다시 꺼내서 글을 쓰기 두려워질 정도였다. 그래도 적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뼈저리게 기억하기 위해서. 때로는 적기 싫은 것도 적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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