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마가복음 2장>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하루 중에 일하는 시간이 다수인 우리의 삶을 비추어 봤을 때, 자신의 생업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마태(레위)는 예수님이 부르시자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업과 가족, 그리고 큰 이익을 자리에 내려두고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오늘 묵상을 하면서 나는 그들의 삶에서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이야기들은 머릿속에 많이 들어 있는데, 그런 하나님이 왜 삶에서 느껴지지 않을까?' 혹은, '내가 아는 종교적 지식과 나의 삶의 괴리가 이만큼이나 있는데, 이걸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갈급함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부르실 때 반응할 수 있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이 여기에 적용되는 게 아닐까 싶다. 항상 목마르고 주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그 참 샘물이 우리를 부를 때 움직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오늘도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우리를 부르신다. 억지로 배에서 끌어내시지도 않고, 세관에 있는 나를 끌고 나오시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서서 문을 두드리신다. 그분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의 감정이 그분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겠지.
요즘에 겪고 있는 이 갈급함을 항상 유지하고 싶다. 예수님이 한 순간이라도 끊기면 살지 못할 것 같은 이 갈급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