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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Nov 16. 2022

용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누가복음 7장>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사랑은 고사하고 용서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 요즘 들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실수로 발을 밟는 것, 불쾌한 소음을 내는 것쯤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 감정을 건드리는 일, 이를테면 나를 배신한다던지, 혹은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경우에는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느냐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너무 쉽게 사과를 해버리면 더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이 등장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를 그 자리로 초청한 바리새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지금 예수님의 발을 닦는 사람이 어떤 죄인인지 아실 텐데, 왜 내쫓지 않으시고 가만히 계실까?'


그러자 예수님은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를 드시며, 더 많은 용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신다. 정죄하는 그 바리새인보다 그 여인이 더 많은 빚을 탕감받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했기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으신 것이다.



        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꽤 자주 그 바리새인의 자리에 서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를 내도 아무도 꾸짖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대상에게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지 고려하지 않은 순간이 많았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인데. 누군가에겐 나도 불쾌한 사람일 텐데. 또, 하나님 앞에 서면 더러운 것 가득한 똑같은 죄인인데. 나는 무엇이라고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의 전제는 더 많이 탕감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충분히 용서받고 사랑받았기 때문에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항상 함께 이야기하신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예수님을 통해 많이 사랑받고 용서 받음으로써, 이웃에게 더 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된다.


오늘 하나님은 내게 당신으로부터 충분히 사랑과 용서를 받으라 말씀하신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채워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이 내게 진 빚도 탕감하여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진 엄청난 빚인 죄를 전부 탕감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사랑 고백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용서하면 상대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상대를 타자화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있다. 그도 하나님의 자녀, 혹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양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사람들을 붙이셨음을 신뢰하며 온유함을 잃지 말자. 그렇게 혐오와 정죄의 삶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자.



그렇게 하나님께 매일 사랑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자. 종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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