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 이젠 돈으로 사겠습니다.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by 김종연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얼마 전 만난 친구, 연락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가물가물한 지인, 자주 연락하는 친한 이들의 연락으로 하루가 분주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축하에 어벙벙하다가, 내 마음속에 욕심 어린 의심이 싹트는 것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축하를 전하는 이들 중에서, 오늘을 스스로 기억해 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었다. 생일이 그렇다. 기억하고 축하하는 게 도의적으로 당연해서 강요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지만, 막상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서운하다. 생일은 사람을 참 옹졸하게 만든다.



나도 참 모순적인 게, 정작 머릿속에 외우고 있는 생일이 많지 않다. 일 년 내내 많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만, 진정 기억하고 보내는 메시지는 많지 않다. 내 생일에 알림을 울려대던 많은 이들처럼 말이다.



하여, 나의 옹졸한 의심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 군데였다. 언제 연락했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재고처럼 쌓여 있는 창 상단,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창구인 '내 프로필' 밑에 자리를 잡은 '생일인 친구'에 내가 나타났겠거니 한 것이다. 지인들에게 내 생일을 상기시켜준 대가로 카카오는 꼬리표를 붙여놓는다. '선물하기' 버튼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한 것은 아니지만,
선물은 보낸다.'



완벽하게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한 문장이다. '난 시간과 돈을 들여 네 생일을 축하해줬어. 그걸 기억까지 해줘야겠어?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야.'라고 생각을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 준다. 밖에 나서서 선물을 고르기는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터치 몇 번으로 하는 것쯤은 괜찮은 관계의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기도 쉽다. 카카오는 매출을 올리고, 사용자는 부담을 덜어낸다. 여러모로 합리적인 교환이다. 마음을 전하는 감정을 판매하는 발상은 너무 영리해서 걸려들지 않고는 다른 수를 찾을 수 없다. 그러는 동시에 이제 우리가 무엇까지 팔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기업의 광고를 마주한 경험이 떠올랐다. '소울'을 보고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는 친구와 함께 전율하고 싶어 늦게나마 찾은 영화관이었다. 평소에는 광고 시간을 피해서 상영관에 들어가는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오지 못한 탓에 시간 감각을 잃었나 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버린 것이었다. 하릴없이 스크린을 보고 있는데, 눈길을 끄는 광고가 있었다. '너에게 밥을 보낸다.'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제목까지 기억하도록 했으니, 광고는 성공적이었다. 조회수도 광고의 성공을 증언해주고 있다.



배달의 민족 유튜브




멀리 떨어져 공시 준비를 하는 아들의 생일날, 미역국은 먹었는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걱정되면서 축하하는 마음을 담은 말 대신,

'너에게 밥을 보낸다'의 한 장면.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


매번 싸우고, 잘 마무리되지 않는 연인. TV에 나오는 인물들은 미안하단 말을 그리도 쉽게 하는데,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힘들까. 내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대신,

'너에게 밥을 보낸다'의 한 장면. 미안하단 말이 어려운 연인.



아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남학생과 여학생.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고 이야기하기도 조심스럽다. 좋아한다는 고백 대신,

'너에게 밥을 보낸다'의 한 장면. 서로 좋아하는 학생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 그간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온 버스 덕에 급하게 뱉은 말, '언제 밥 한번 먹자.' 멋쩍게 웃으며 그 '언제'가 언제쯤 일지 모른다는 씁쓸함을 삼킨다. 날 잡자는 얘기 대신,

'너에게 밥을 보낸다'의 한 장면.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친구.




밥을 보낸다.



직접 얼굴을 보고 하기에는 부담되고 어려운 말을, 바코드가 박혀있는 기프티콘으로 대신 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였다. 시간과 마음을 쓰며 채워갔던 소통의 순간을 이젠 돈으로 채울 수 있게 되는 걸까. 그게 익숙한 세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저 내가 새로운 흐름에 뒤쳐져, 과도기를 지나느라 어딘가 어색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분명 몇 시간을 걸어 다니면서 선물을 고르던 때보다 우리는 연결됐는데, 언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분명 우리는 가까워졌는데, 왠지 벽이 생긴 것 같다. 우리는 빨라진 속도만큼 신속하게 단절되고 있다.



'생일 축하해.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미안해', '밥 꼭 같이 먹자. 이 날 어때', '좋아해'. 이런 말들을 직접 하는 부담스러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영리하게 이를 파고든 전략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선물하기'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욕구를 편하고 쿨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이런 발전 덕분에, 보내는 이의 마음은 점점 편해지지만, 받는 이의 마음에는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상대방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인데, 왠지 모르게 흐르는 단절감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왠지 자신이 염치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실체 없는 압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은 '선물'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웃으며 고맙다, 뭘 이런 걸 다 보내느냐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좋은 마음으로 보내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받는 이의 의무이니까. 상대와 나의 역할이 바뀌었을 때 나도 같은 반응을 기대한다. 우리는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역할극을 반복한다. 이는 서운함이나 단절감은 없이 웃음만 존재하는 희극인가 보다.



언제나처럼, 나는 이 글에서 내게 축하를 보내준, 간혹 선물도 들고 와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뭘 이런 걸 다 준비했느냐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너무 고맙다고. 그렇게 웃음 지으려 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 이제 역할을 바꾸지 않겠느냐고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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