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인(迷人)입니다. 그쪽은요?

저요? 미인(美人)은 아니긴 한데...

by 김종연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나는, 길을 잃은 일이 없다. 사람마다 길 잃음을 정하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는 당황함을 기준으로 이를 판단한다. 원래 길에서 떠나, 당황하여 원래 방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길을 잃었다'라고 표현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는 길을 잃은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지도를 보는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달아도, 머잖아 원래 가려던 길과 합류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망한다 했던가. 나를 재촉하는 일정의 압박이 없으면, 나는 길을 잊는 것과 놓는 것 사이에 있는 행위를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목적지는 있지만 시간이 충분한 상황은 이 행위를 하기에 알맞은 상황이다. 이를테면, 밤늦게까지 이어질 것 같았던 약속이 예상보다 일찍 파해서 시간이 생기거나, 다음 일정까지의 간격이 애매해서 빨리 이동했다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겠다 싶은 상황이 있다.




이 상황이 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길을 잊거나 놓는다. 정해진 길만 걷다 보면 찾기 어려운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마음껏 표출하면서. 물론 처음 만난 새로움은 낯설다. 그러나 낯선 새로움을 마주해보면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겨움을 느낄 수가 있다. 열차를 타고 수 백번은 지난 기찻길 변두리를 따라 걸어가면 '전지적 작가 시점'을 직접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이 풍경은 낯설지만 정겹다. 또, 처음 본 골목길의 작은 놀이터에서는 드라마에서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정겹지만 낯설다. 낯선 정겨움은 초행의 두려움을 잊기에 충분한 달콤함이다. 뇌에서 이 당분을 기억하기만 하면, 나는 백이면 백 넘어간다.




겉으로 보면, 내가 길에서 시간을 소비하기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길 놓기'는 애매한 시간을 길에서 소비하는 개념을 뛰어넘는 행위이다. 버스나 지하철은 너무 빨라서, 둘러싼 세계를 느낄 시간도 없이 나를 목적지에 밀어 넣는다. 등 떠밀려 목적지에 다다르면, 주위를 느끼고자 했던 마음에서 깨어나 하려던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하려던 일'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하고 있던 일이다. 매일 반복되거나 언젠가 보고 듣고 경험하던 것. 매일 반복된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는 것은 사람이 아닌 기계도 하는 일이다. ('아, 볼트를 평소보다 많이 조여야 하니 두 시간 일찍 일어나야지.'처럼 시간을 주체적으로 아끼진 않지만, 그들 외부의 존재가, 이를테면 사람이, 시간을 관리해주는 게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길 놓기'는, 채플린의 시대부터 상실되고 있는 인간성을 지키려는 1인 시위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정에 없던 길을 가는 것이 먼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서, 해롭지 않는 방황을 한다는 마음을 팻말처럼 들고, 그날에 기분에 맞는 걸음으로 행진을 하는 것이다.




낯선 대상에게 이름 붙이는 것은 필경 사람의 본능이다. 나는 그 본능에 따라, 이 생소한 저항운동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미남, 미녀의 미가 아닌, 미아, 미신의 미를 쓰는 미인(迷人)이라 하겠다. 이는 길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 제목을 정하다가 나름 언어유희를 이용해서 만든 이름인데, 한문 능력자에게는 우스워 보일 수 있다. 양해를 구한다. 부끄럽다.) 길을 잃고 그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은 진정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미인(迷人)은 미인(美人)이다.




사실 미인(迷人)은 원래 있는 단어로,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미련한 사람 정도가 되겠다. 뜻이 있는 줄 모르고 엉터리로 만든 단어이지만, 사전에서 이 의미를 본 후에 더 마음에 들게 되었다. 길을 잃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원래 가려고 했던 길에서 벗어나 떠도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수입을 얻거나 미래의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시간을 길거리에서 소모하는 행동은 미련하다.




그렇지만 난 그 미련함이 좋다. 난 내 인생에 대해 충분히 걱정하고 있고, 미래를 위해 행동한다. 때론 다른 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위기와 자극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조급함에서 벗어나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주었던 것은, '미련함'을 추구했던 시간이었다. 올바른 길을 가는 것에 매몰되어 있는 일상의 대부분에서 벗어나, '전지적 작가'의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순간은 다시금 중심을 잡게 한다. 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끌려다니지 않는 삶에 가까워진다.




길을 잃는 것이 무섭고 혼란스럽다면, 또는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 같다면, 잠시 길을 놓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살이처럼 내일 없이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잠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미련한 모습으로 정말 자신의 인생이 흔들리는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지금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길을 잃는 것은 살며 만나야 하는 풍경을 찾아가도록 하는 운명의 장난이 아닐까. 속은 셈 치고 잠시 떠난다면, 낯선 달콤함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나는 미인입니다. 그쪽은요?"





커버 사진 - Jordan Row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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