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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 Dec 09. 2022

7초만 기억하는 남자를 아시나요?

최악의 기억상실증을 앓는 영국의 존경받는 지휘자


출처: BBC News

‘기억이 없는 남자', ‘7초의 남자'. 이 단어들은 심각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클라이브 웨어링이라는 84세의 남성이 불리는 수식어다. 그의 경우는 의료계에서도 최악의 건망증 케이스 중 하나로 여겨진다. 건망증은 생각보다 흔한 뇌 질환이지만, 웨어링 씨가 겪고 있는 것처럼 꾸준한 강도로 계속해서 기억을 상실하는 것은 굉장히 희귀한 증상이다. 그는 매일 잠에서 깰 때마다 코마 (coma) 상태에서 깨어났다고 믿고 있다. 


그가 건망증과 맞닥뜨리기 전 살아가고 있던 삶은 꽤 촉망받던 장래였다. ‘런던 신피오네타 앙상블'의 존경받는 성가대 지휘자이자 BBC의 음악 프로듀서로서, 웨어링 씨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부와 명예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완전 기억상실 (total amnesia) 를 앓게 된 이후로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일과성 기억상실 (transient amnesia)의 원인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기충격 테라피 혹은 트라우마적 상황 등 머리와 뇌에 충격을 주는 사건 등이 유력한 원인이다. 특히나 해리성 기억상실 (dissociative amnesia)같은 경우에 위와 같은 원인 등이 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웨어링 씨의 건망증 증상들은 1985년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그의 신경계를 감염시키고 난 뒤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억상실증이란?

Amnesia, 즉 기억상실증은 뇌 손상, 질환, 혹은 심리학적 트라우마 등의 이유로 인한 기억력 결핍을 뜻한다. 웨어링 씨의 경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그는 선행성 기억상실 (anterograde amnesia) 그리고 역행성 기억상실 (retrograde amnesia) 두 가지 타입의 기억상실증을 모두 앓고 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새로운 기억을 창조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며, 역행성 기억상실 환자들은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다. 웨어링 씨의 기억력 부족은 ‘에피소드 기억'에 해당하는데, 이는 그가 일과적으로 하는 일들의 작은 디테일 등을 기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의미 기억 (semantic memory) - 상식 혹은 기본적인 사실 - 등은 보존된다. 이 덕분에 웨어링 씨는 영어를 쓰고 말하는 법, 성가대를 지휘하는 법, 노래하는 법, 라틴어를 읽는 법 등은 문제없이 기억하지만, 그 기억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웨어링 씨의 기억 중에는 그의 자녀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생일은 없다. 음식들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그 음식의 맛이 어떤지 연결 지을 수는 없다. 그의 아내인 데보라 웨어링 씨에 의하면 그의 기억은 짧게는 7초부터 길게는 30초까지 유지된다고 한다. 


심리학자들과 의학자들은 웨어링 씨가 바이러스 뇌염을 앓은 이후로 좌측과 우측 측두엽 전부, 그리고 전두 측두엽 일부가 손상되었다고 진단했다. 그의 해마 (hippocampus, 즉 의식적, 에피소드적, 그리고 감정과 연계된 기억을 관장하는 변연계의 일부 기관) 또한 완전하게 손상되었으며, 이는 단기적인 기억을 장기적인 기억으로 바꾸는 기능이 사라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웨어링 씨는 가장 최근의 기억들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그의 아내가 추천한 ‘매일 일기 쓰기'를 실천했을 때, 내용의 대부분은 ‘나는 현재 깨어있다' 혹은 ‘나는 지금까지 죽어있었다' 등이었다. 그는 일어난 몇 분 뒤에도 스스로가 깨어있음을 지속해서 강조하였으며, 그 내용은 ‘나는 지금 압도적으로 깨어있다' 혹은 ‘처음으로 완전하게 깨어났다 (British Musician Battles Amnesia, 2005)’ 등이었다. 그는 가끔 평정심을 잃어, 다른 누군가가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며 글을 성급히 고치거나 휘갈겨 쓰기도 했다. 


웨어링 씨의 일기 일부. 출처: Patrick's Case Studies

놀랍게도 그 중 절차성 기억 (procedural memory) 인 음악과 관련된 기억은 보존되었다. 어떤 악보를 보고도 흠집 없이 피아노를 칠 줄 알았는데, 이는 그의 머슬 메모리가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보가 없을 때는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으나, 반복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에 처음 연주했던 멜로디를 계속해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의 증상 중 하나는 스스로가 낮잠을 자는 상태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의 중간쯤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올리버 색스가 2007년에 한 케이스 스터디에 의하면 웨어링 씨는 인터뷰 중 지속적으로 잠이 들었으며, 스스로가 후각과 구개, 촉각 등을 포함한 감각들을 방금 막 찾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텔레비전 속 성가대를 지휘하는 자신을 보고 본인이 아니며,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스스로가 심연 속에서 방금 빠져나왔으며 조금 전까지 ‘죽어있었다'라는 말 등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기억상실증 진단 이후 웨어링 씨는 지휘자로서도, 프로듀서로서도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첫 몇 년간은 정신병동에서 지냈지만, 그 이후 그의 아내가 계속해서 비슷한 증상을 지닌 환자들과 숙련된 심리학자들을 찾아 나가며 든든한 보호자이자 아내로서 지내고 있다. 물론 그녀도 첫 몇 년간 계속해서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함에 지쳐 이혼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웨어링 씨의 곁에 남기를 선택하며 그의 경험과 관련된 책도 집필하게 되었다. 현재는 다행히도 교외의 집으로 이사한 이후 꾸준한 산책과 가까운 친지들을 곁에 두며 웨어링 씨 부부의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보고된다.


출처:

P. (2014, May 29). Clive Wearing: The Man With the 30 Second Memory. Retrieved from https://futurism.com/clive-wearing-the-man-with-the-30-second-memory

Dworschak, M. (2005, May 01). British Musician Battles Amnesia: The Man without a Memory - SPIEGEL ONLINE - International. Retrieved from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spiegel/british-musician-battles-amnesia-the-man-without-a-memory-a-354754.html

How herpesvirus invades nervous system. (2013, March 28). Retrieved from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3/03/130328091754.htm

Sacks, O. (2017, July 06). The Abyss. Retrieved from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07/09/24/the-abyss

Transient global amnesia. (2018, August 15). Retrieved from https://www.mayoclinic.org/diseases-conditions/transient-global-amnesia/symptoms-causes/syc-20378531 


출처: 심리학신문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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