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이든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는 <스토너>
우리는 삶의 단편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접하게 된다.
미디어가 주로 선보이는 자극적이고 단발적인 드라마는 대부분 주인공의 삶에서 작은 한 부분이며, 주인공의 남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 평범한 일생에 관하여 담백하게도 풀어낸 소설이 있다.
<스토너>는 한 인간이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묵묵히 '살아내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불같이 빠져 극적인 사랑의 도피를 하거나, 뜻밖의 사건에 우연히 연루되어 더이상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류의 전개는 스토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찮은 계기로 숨겨져있던 영문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조교수로 일임하는 윌리엄 스토너.
독자는 그 과정을 전부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토너], pg 1
소설의 첫 대목에서도 나오듯 어느 방면으로 보아도 스토너는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소설은 특별한 재능 혹은 어떠한 운명을 지닌 누군가의 성공신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라는 소설이 그리 특별한 이유는, 독자는 그렇게 '별 것 아닌' 한 사람이 내재한 - 후의 삶의 이유가 되는 -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가지게 된 계기에서부터 결과까지 오롯이 그의 입장에서 이입해 함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읽는 나 또한 그리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이입이 잘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옆에서 같이 거닐듯 돌이켜보며 마무리짓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위로가 된다.
타인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기가 힘들며, 자신의 안을 돌아볼 틈조차 찾기 힘든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의 가장 순수하고 가식없는 안을 들여다보는 것.
스토너는 그의 생각과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며 너는 어땠냐고 묻는 것 같다.
그럼 우리는 나는 어땠는가, 하고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윌리엄 스토너가 태어나 손에 흙을 묻히던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 그의 삶을 함께한 나는 어느순간 그를 잘 아는 오랜 친구가 된듯한, 심지어는 그 자체가 된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전혀 극적이지 않은 죽음을 평범하고 조용히 맞이하던 순간에는 비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 눈치보며 애를 쓰는 우리들에게 그의 솔직함이 주는 건 일종의 카타르시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성공이나 명예도 거머쥐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솔직함의 결과값이자 이면같기도 하다.
다만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그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그를 위대하다고 기억할 것이다.
순간에 지나지 않는 극적인 이야기에 중독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또 나에게 <스토너>는 어떠한 삶에도 의미가 있고, 어떠한 삶도 스스로가 떳떳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위대하다고 말해준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스토너], pg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