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순환

질량 보존의 법칙

by 탄주


많은 비가 내렸다. 빗물은 낮은 데로 흘러서 개천으로 모이고 개천 물은 강으로 모이고 강물은 결국 바다로 간다. 세상에 내린 빗물은 결국 바다로 갈 것이니 바닷물은 조금씩 증가할 것인가?

바다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증발하는 물도 있으므로 들어가는 물과 증발하는 물의 양을 배교하면 된다. 증발하는 물이 많으면 바닷물은 줄 것이고 강물이 많으면 바닷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바닷물의 양이 10년 2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한쪽이 많으면 바닷물은 점점 줄거나 늘 것이다. 빗물이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지하로 들어가는 물은 지하수가 되어 결국 바다로 갈 것이고 식물이 흡수한 물은 증산 작용에 의해서 잎에서 공간으로 나간다. 사람이나 동물이 먹는 물도 땀이나 오줌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식물이나 동물이 죽어 쓰러지면 분해되면서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지구상의 물의 양은 항상 보존된다. 태양 에너지에 의해서 바다에서 육지로 순환할 뿐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숨을 쉬고 이 숨을 5분간 멈추면 살기 힘들다. 숨을 쉬는 이유는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동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매 순간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그러면 공기 속에는 산소가 감소하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할 것인가?

식물은 살아가기 위해서 동물과 반대로 이산화탄소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산소가 발생한다. 산에 가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신선한 산소가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물도 사람이 이산화탄소를 공급하고 배설물인 산소를 제거해 주므로 사람이 오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식물이 생산하는 산소보다 동물이 소비하는 산소가 많으면 공기 중의 산소는 점점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동물은 살기 힘들어지고 식물은 살기 좋은 환경이 되므로 동물의 숫자는 줄어들고 식물의 숫자는 늘어나게 된다. 그 결과는 산소의 소비는 줄고 산소의 생산이 증가할 것이므로 산소가 계속 줄지 않고 어느 선에서 멈추게 된다. 이산화탄소의 관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그대로 두면 스스로 균형을 맞춰가는데 이를 자연계의 평형이라고 한다.

산에 있는 바위는 시간이 지나면 풍화작용에 의해서 자갈로 쪼개지고 자갈은 모래로, 모래는 빗물에 의해서 강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작은 입자로 변해서 바다 아래에 쌓이게 된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식물의 시체와 함께 쌓이면서 굳어지면 퇴적암이 생긴다.

너무 깊이 지하 속으로 들어가면 뜨거운 열에 의해서 녹아 마그마가 되고 이것이 지표면에 나와 식은 것이 화성암이다. 그 화성암은 다시 풍화작용에 의해 바다로 옮겨져 퇴적암이 된다. 퇴적암을 산에서 볼 수도 있는데 이는 퇴적암이 녹기 전에 지진이나 지표면의 변화로 육지에 노출되는 경우이다. 만약에 과거 동식물의 화석을 발견하고 싶으면 화성암이 아닌 퇴적암에서 찾아야 한다. 퇴적암의 특징은 잘 보면 켜켜이 쌓인 모양을 하고 있다.

양초가 타면서 그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 그렇다고 양초라는 물질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양초가 타기 위해서는 공기 중에 산소가 필요하고 양초를 이루는 성분인 탄소와 만나서 이산화탄소가 생기고, 수소와 만나서 수증기가 발생하여 공기 중으로 퍼진다.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질량이 있으므로 이 세상에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이때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의 질량을 더하면 애초 양초의 질량보다 공기 중에서 양초를 태우기 위해 필요한 산소의 질량만큼 많다. 즉 양초가 없어져도 양초를 이루는 질량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물질로 바뀐 것이다. 이를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 한다. 책사에서 떨어진 지우개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해서 이 지우개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다. 질량은 보존되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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