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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03. 2021

내가 잘 하는 일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내게 소설을 가르친 선생님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그즈음 나는 여러 공모전에서 연신 고배를 마시고, 소설을 계속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선생님의 그 충고를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다 그 말에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늘 잘하지 못하는 일을 잘하려고 하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가끔 산책하러 집 뒤편 공원에 간다. 그곳엔 밑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하나 있는데, 내가 갈 때마다 중학교 육상부 선수 한 명이 계단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하루는 나도 그와 함께 계단을 달렸다. 세 번 정도 반복하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 고통스러운 훈련 뒤에는 뭐가 있어?" 나는 숨을 고르면서 물었다. "승리."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후에는?" "고통스러운 훈련." "그 후에는?" "승리." "그다음에는?" "훈련." 나는 몇 번인가 그가 출전한 대회를 보러 갔다. 그는 늘 예선에서 탈락했다.

소설 쓰기에는 묘사라는 방식이 있다. 나는 묘사를 못한다. 잘해 보려 노력했던 적이 있다. 대가들의 작품을 필사하고, 우리말 갈래사전을 보면서 어휘력을 늘리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당연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면서 묘사를 버렸다.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은 안 하면 된다.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후로는 설명과 생략으로만 소설을 쓴다. 훨씬 즐겁고, 결과도 좋다.            




우리는 단점을 고치고 부진한 것을 보강하는 '열심히'의 방식에 너무도 익숙하다. 그런 방식은 대개 평균으로 수렴된다.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특별히 좋지도 않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기 쉽다. 너무 열심히만 살고 있다. 잘하는 걸 찾아보면서, 잘 살아 보는 것도 중요한데.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8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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