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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16.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4

단편 소설

아내는 정말 갑자기 죽었다. 


그날도 아내는 도장의 문하생들을 챙긴 후에 내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쓰러졌다. 의사 말로는 뇌일혈과 뇌출혈이 동시에 왔다고 했다. 머리의 안쪽과 바깥쪽 혈관이 모두 터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내는 혈압도 정상이었고, 어떤 전조도 없었다. 


운이 없었다고.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대신 아내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아내가 동사무소에서 하는 에세이 수업에서 쓴 유서를 찾았다. 그 유서는 이렇게 끝난다. 


-여보. 저승에 가면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장군, 검객들을 찾아서 시합을 주선해 놓을게. 지금보다 몇 배 더 강해져서 와. 


아내는 자신이 나보다 일찍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딸은 행복했나?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던 장인은 장례식에 찾아와 그렇게 물었다. 


-네. 무척.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만남과 이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원래 칼싸움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니까. 


나는 하루에 만 번씩 검을 휘둘렀다. 




광화문 앞을 지나간 적은 많지만, 청와대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민간에 개방되어 원하면 누구나 견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출근을 하기 전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영상과 사진을 봤다. 실제로 본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청와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사람은 남의 설명을 들을 게 아니라 그냥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된다. 


청와대 제2 부속실 5급 행정관. 그게 내가 맡기로 한 직책이었다. 내가 그들의 제의를 수락한 것은 현실적인 금전 문제와, 나를 소개한 협회장의 체면, 무엇보다 정치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부는 인간의 생과 사를 가른다는 측면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과 정치는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라고 했다. 본질이 같은지는 몰라도 파급력은 전혀 다르다. 검은 대인 병기다. 평생을 열심히 휘둘러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은 50만 명이 넘는 군의 통수권자다. 그의 명령 하나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의료보험이나 연금정책을 조금만 손대도 수만 명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나는 이 나라 정치인의 정점인 대통령을 봐두고 싶었다. 


형식적이지만 면접도 봤다. 무슨 무슨 실장, 차장이라는 남자 셋이 내 이력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건 비공식적으로 묻는 건데요. 지난 대선 때 1번 찍었습니까? 2번 찍었습니까? 


면접이 끝날 때쯤, 내내 가만히 있던 경호실장이 그렇게 물었다. 농담인가 싶어 눈을 쳐다봤는데, 의외로 진지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원치 않는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애초에 나는 지금의 대통령이 후보 때 1번이었는지, 2번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비밀 선거가 원칙 아닌가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경호실장은 순순히 파일을 덮으며 일어났다. 나를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 편은 아니다 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게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가 대통령을 가르칠 때, 반드시 경호원 두 명이 참관을 했다. 

뉴스나 신문에서 자주 본 탓인지, 대통령은 낯설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았다. 배우는 자세도 훌륭한 학생이었다. 보통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직책이 높은 사람을 가르치면 불편함이 있는 법인데, 대통령은 가르치는 사람을 편하게 해줬고, 뭘 시키든 군말 없이 잘 따랐다. 지루할 수 있는 반복적인 동작도 웃으면서 끝까지 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했다. 대통령의 집무가 끝난 후에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에 시작했다. 외부 행사나 긴급한 회의가 없는 한 대통령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왔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꽤 즐거워 보였다. 


-불면증이 있었는데, 운동을 하니 약을 안 먹어도 밤에 잠이 잘 옵니다. 


내가 성실함을 칭찬하자,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처음에 만났을 때, 피곤해 보였던 얼굴이 부쩍 생기 있어 진 것 같았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참관을 하던 경호원이 잠시 나를 불러 세웠다. 


-잘 아시겠지만, 대통령께서 수면제를 처방받으셨다는 건 국가 기밀입니다. 어디에서도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경호원은 협박조로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올 때 비밀유지에 관한 교육을 받았고, 서약서에 서명도 했지만, 바로 턱 밑에 와서 위협을 하니 새삼 기분이 언짢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원래 밤에 잠이 없는 법입니다. 


내가 말했다. 


-뭐라구요? 


경호원이 인상을 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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